「정신의 풍요」를 되찾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물량일변도의 경제발전에 몰두하던 60년대가 지나고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2경제로서의 정신문화와 민족문화의 창달이 지도층을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인들에 의해 거듭 강조돼 왔다.
그러나 70년대의 이같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비록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정신문화 계발에 대한 일반적인 등한시 풍조는 물질의 풍요에 반비례하는 도덕의 타락을 초래했고 이에 따라 국가기강과 국민윤리의 기반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부각돼 온 게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진정한 인간생활의 풍요는 경제적 물량과 정신문화의 균형있는 발전속에서만이 가능하다는 통설을 뼈저리게 반추하게 한 70년대였다.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 역설돼 온 정신문화나 민족문화의 계발은 국가산업 발전이라는 당면과제에 밀려 별다른 실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80년대를 맞았다.
한시대를 청산한 새 시대의 개막이라는 새로운 민족사의 전기를 맞는 다난한 80년대의 서막에서 무엇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것은 민족문화의 계발문제이다. 경제안정의 토양 위에서 민족문화의 계발문제는 지난 20년동안 뒷전에 밀려나 있었으므로 이제 이 문제야말로 당연한 국민적 과제인 것이다.
22일 국민투표에 붙여질 새 헌법안은 물질문명의 발전을 추구하는 경제조항들에 못지않게 정신문화의 창달을 위한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계발노력을 국가의무』로 강력히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국가의지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를 구현하려는 새시대의 국가목표를 물질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정신문화의 계발에 의한 국민정신의 개조를 통해 실천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 언필징 문화예술 창조에 참여한다는 한사람으로서 새시대를 개막하는 국가의지를 담은 이같은 헌법안에 마음속으로부터의 반가움을 금할 수 없다. 물질의 풍부함보다는 정신의 풍요를 늘 강조해 오는 한 문화예술인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모든 뜻있는 국민들의 문화의 정체현상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준 쾌거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민족문화를 계승발전시켜 조상의 얼을 오늘에 이어 새롭게 창조하고 이를 후손에 전함으로써 오늘을 사는 보람을 찾을때 비로소 민족의 무궁한 발전이 기약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모든 문화예술인들은 새시대를 들어서는 문화예술인의 사명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지적한대로 민족문화의 계발이라는 사명을 다짐하는 약속을 새 헌법안에 명시했다. 이러한 싯점에서 문화예술인들도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시대에 임하는 새로운 자세를 갖춰야할 것 같다.
그동안 우리 문화예술계는 내면보다는 의형을, 질보다는 양을, 창작실력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폐습에 젖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화예술의 생명인 창작성은 이같은 풍조에 휩싸여 발전은 고사하고 후퇴하는 경향마저 없지않았다.
자체내의 뼈저린 반성과 함께 문화예술인들은 새로운 국가의 시대적 요망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새시대의 정신문화와 민족문화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해외홍보를 통한 국위선양의 민간외교관으로서 소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엽적이나마 새시대의 문화예술 전개를 위한 시급한 몇가지 제언으로 국전운영의 일대 개혁과 적극적인 민족문화의 해외홍보를 촉구하고자 한다.
국전은 모든 파벌의식을 타파하고 발전성 있는 후진들의 대거참여를 유도, 신진 예술인의 발굴에 기여하도록 일대의 수술이 단행돼야 한다.
문화민족으로의 저력을 과시할 수 있는 대외문화홍보는 국가적 차원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끝으로 수준높은 문화예술의 보급을 대중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 폭넓은 문호가 열려야 하며 문화예술의 육성을 통한 국민정신의 순화정책이 적극 추진될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