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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마지막 남은 적자|북괴 제 2인자 김정일의 정체|75년 후종 확정…″유일한 지도자〃로 불러|70년대 초반 당직 맡기면서 ″대를 이어 충성〃노래 강요|동독항공대 수료…권력층 암투로 한때 수난을 겪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40년2월16일 김일성과 그의 사망한 전처 김정숙 사이에 태어났다. 아래로 43년 소련에서 태어난 남동생(유라=소련명)이 있었으나 48년 김일성 관저의 연못에서 익사했기 때문에 현재 김일성의 하나 남은 적자다.
동생「유라」 익사
그는 「김일성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동독방공대학에서 2년간 수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代초반에 그는 김일성호위실에서 근무하다가 70년대 초반에 들어 당 선전 선동 부 및 문화예술부부부장에 임명되면서 모든 문예활동 등을 김일성 및 그 가계우상화선전에 초점을 맞추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73년 정체 드러나 김정일이 외부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73년 9월 이후부터. 그 해9월3일부터 17일까지 개최된 북괴당 제5기 7차비밀전원회의서 북괴는 김정일을 북괴당 조직지도 및 선전선동담당비서로 선출했던 것이다. 이후 북괴는 각급 당 회의 때마다 김정일에 대한 녹음 강연을 2시간씩 계속하며 강연 전에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전원이 일어서서 합창하는 한편 그를 이른바「존경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로 호칭토록 했다.
또 북괴는 「김일성 교시」외에「김정일 교시」란 것을 전 당원들이 준비, 학습토록 했으며 『대를 이어 충성하렵니다』라는 김정일 찬양노래를 만들어 전 주민들에게 보급하기도 했다.
온갖 찬양가 등장
74년 4월에 들어 북괴는 김정일에 대해「친애하는 김정일비서동지」「친애하는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비서동지」로 공식 호칭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김정일 축하 및 김정숙 업적보고」모임을 전국적으로 개최하면서 조총련에 대해서도 75년5월부터 김정일을 후계자로 한다는 당방침을 하달했다.
사진부착 의무화
그때부터 당 주요건물 및 각 공장·기업소등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나란히 부착되기 시작했고 그해 당 참전 30주년을 기해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에게 영광을 드립니다.』라는 찬양노래가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보급됐다.
75년 말부터 북괴는 김정일을 「유일한 지도자」로 호칭토록 했으며 76년2월16일 그의 36회 생일을 휴무 일로 정하는 한편 「소년단」평양시연합단체모임과 「제1차 전국학생들의 충성의 제전」등의 대규모적인 행사 등을 벌여 그의 기반을 굳혀갔다.【내외통신】
생일을 휴무 일로
그러나 북괴의 이러한 김정일 후계자 추진과정에서도 권력핵심층과 족벌내의 권력암투로 한때는 그가 총책을 맡았던「3대혁명소조」가 철수됐다. 전국에 걸려있던 그의 초상화까지 철거된 일이 있다.【내외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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