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 닮은 '칩' … 기계, 세상을 인식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모드하 박사

인간의 뇌 용량은 2L가 채 안 된다. 하지만 어떤 초대형 컴퓨터보다 빠른 지각 능력을 자랑한다. 지각 능력은 시각 등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다. 컴퓨터는 계산능력은 월등하지만 이런 능력은 인간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유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컴퓨터 모습은 달라질 전망이다.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획기적인 컴퓨터 칩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컴퓨터 회사 IBM은 컴퓨터·스마트폰에 쓰이는 컴퓨터 칩과 달리 인간의 뇌를 닮은 컴퓨터 칩(뉴로모픽칩·Neuromorphic chip)을 개발하고 ‘트루 노스(True North)’라고 이름 붙였다고 7일 밝혔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온라인판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서다. 최근 인텔·퀄컴 등도 뉴로모픽칩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실험실 수준이 아닌 공장 생산이 가능한 형태로 이런 칩을 만든 건 IBM이 처음이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로 돼 있다. 각각의 뉴런은 약 100조 개의 시냅스(Synapse·신경세포 연결 부위)를 통해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뉴런은 시냅스를 통해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처리·저장한다. 하나의 정보를 여러 개의 뉴런이 나눠 맡아 처리하고 시냅스의 연결도 가변적이다. 일을 많이 하는 뇌 부위는 시냅스 연결이 늘어나고, 일을 안 하는 부위는 연결이 끊어진다. 이런 효율적인 구조 때문에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며 대용량의 정보를 고속으로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다.

 컴퓨터는 이와 반대다. 정보를 처리하는 칩(CPU)과 저장하는 칩(메모리)이 나뉘어 있다. 1945년 수학자 요한 폰 노이만이 설계한 ‘폰 노이만 방식’이다. 컴퓨터는 CPU로 데이터를 처리한 뒤 메모리에 보내 저장한다. 저장된 데이터가 필요할 땐 다시 메모리에서 CPU로 불러온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정보 처리를 하다 보니 CPU와 메모리 사이에 ‘병목 현상’이 생겨 속도가 느려진다.

 IBM이 개발한 트루 노스는 이와 달리 인간의 뇌처럼 정보를 처리한다. 54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약 100만 개의 ‘디지털 뉴런’, 2억5600만 개의 ‘디지털 시냅스’를 만들었다. 2011년 내놨던 뉴런 256개, 시냅스 26만2000개짜리 유닛(코어) 4096개를 칩 하나에 담았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트루 노스 칩으로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과 자동차·자전거 등의 물체를 실시간으로 식별해 내는 데 성공했다. 400X400화소의 화질로 초당 30프레임씩 움직이는 동영상을 처리하는 데 든 전력은 63mW(1mW=1000분의 1W)에 불과했다. 최근 구글이 일반 컴퓨터 칩을 사용해 동영상 속 고양이와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1만6000개의 칩과 100kW(1kW=1000W)의 전력을 사용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미래재단의 지원을 받아 뉴로모픽칩을 연구 중인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트루 노스에 대해 “코어 수를 늘리고 코어 간에 통신을 가능하게 해 응용 분야와 실용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IBM은 트루 노스를 16개, 64개, 256개, 1024개 등의 순으로 계속 연결해 인간의 뇌 성능에 도전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사이언스’는 시(視)지각 기능을 갖춘 뉴로모픽칩이 실용화되면 시각장애인용 내비게이션 안경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를 주도한 IBM의 다르멘드라 모드하 박사는 “단지 예산이 문제일 뿐”이라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모드하 박사는 인도공과대(IIT)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UC샌디에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한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