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판에 다걸기 … 숨고르는 삼성·애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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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삼성전자와 애플이 6일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진행하던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양사 모두 아이폰의 본고장이자 특허전쟁의 핵심 전장(戰場)인 미국 소송에 집중하기 위해 전열정비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오전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진행 중인 양사의 특허소송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을 제외한 한국·일본·독일·네덜란드·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호주 등 9개국에 걸려있던 소송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제 미국에서의 소송 2건만 남았다. 삼성전자 측은 “그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소송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막대한 인적·물적 비용이 드는 소모전을 멈추고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역량을 붓는 게 낫다는 데 양사가 뜻을 같이했다고 추측할 수 있 다. 두 회사의 법적 공방은 2011년부터 이어져 왔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태블릿 관련 통신 표준특허 등을, 애플은 디자인 특허 등을 걸고 넘어졌다. 진행중인 소송만 10개국에서 30여건. 삼성전자 내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그동안 들인 변호사 비용만 최소 2500억원 정도로 예상되고 애플은 그보다 조금 더 한 수준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양측이 수임료로만 약 6000억~7000억원 정도를 썼다는 얘기다.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열리던 시기엔 양측 모두 잃는 것보다 얻는 게 컸지만 시간이 지나 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무엇보다 중국과 인도 업체들이 막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삼아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 삼성과 애플을 위협하고 있다. 이미 지난 2분기 중국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중국의 샤오미에 1위 자리를 내줬고, 애플은 아예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는 조사결과(캐널리스)도 발표됐다.

 양측은 지난 6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정에 대한 항고를 취하했다. 애플은 지난달 자사가 승소한 미국 1차 소송의 항소도 취하했다. 이제 남은 건 1차 소송에 대한 삼성전자의 항소와 2차 소송에 대한 재판부 판결이다. 애플은 1차 소송 항소를 취하했지만 삼성전자로선 ‘애플에 9억2900만 달러(약 1조 원)을 물어내라’는 캘리포니아 법원의 판결에 따르기가 어렵다. 삼성전자는 이날 “미국에서의 특허소송은 계속 진행될 예정”이라고 못 박았다.

 2차 소송은 규모가 더 크다. 애플은 삼성에 ‘21억9000만 달러(약 2조2740억 원)를 손해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양측 모두 미국이란 ‘큰 판’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 국가에서 진행중인 ‘곁가지’ 소송을 정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한 외국계 법무법인 관계자는 “삼성과 애플이 완전히 화해하려면 한쪽이 엄청난 양보를 해야하는데 둘 다 그럴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소송전의 추이와는 별개로 삼성전자와 애플의 자존심을 건 ‘제품 경쟁’은 오는 9월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3일, 애플은 엿새 뒤인 9일 각각 전략 제품인 ‘갤럭시노트4’와 ‘아이폰6’를 출시할 예정이다. 아이폰6는 시장 점유율 확보와 영업이익 극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팀 쿡 CEO의 철학이 담긴 첫 번째 작품이 될 전망이다. 애플은 한 손에 잡히는 3.5~4인치 크기를 강조했던 잡스의 유산을 버리면서까지 아이폰6의 화면 크기를 4.7인치와 5.5인치로 대폭 키울 것으로 알려졌다.

이소아·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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