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청년의 시선을 빌어 한국 관을 분석 장용학의 『부여에 죽다』|회사라는 조직사회 속의 갈등을 그려 이동하의 『번 제』|영적 치유를 통해 신비의 세계를 추구 유홍종의 『요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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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실로 오랜만이 장용학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 발표된『부여에 죽다』 (현대문학)란 작품은 「하따나까」(전중)라고 불리는 일본인 청년의 시선을 빌어 일본인들이 오래 전부터 잘못 가지고 있는 한국 관을 논리적으로 분석해보고 있다. 삼국시대의 역사와 일본 고대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다대한 지적 관심을 가지고있고, 또 아버지와 자신이 한국인에게 큰 피해를 줬다는 자책감을 안고 있는「하따나까」는 예로부터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지녀왔던 우월감과 열등감을 다각도로 분석하였는데 결국 그에 의하면 일본인들의 우월감은 열등감의 반작용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의 끝에 가서「하따나까」는 한국인 「미스」유를 죽음으로 몰아간데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유서를 남기고 부여의 낙화암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일본연구를 소설화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장용학 특유의 서술방법, 즉 지적 분석의 방법을 그대로 재생시키고 있어 관념소설의 한 본보기가 될 듯 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장용학은 이미『요한시집』이래로 소설을 아주 개방된 양식으로 보아왔다.
그리하여 그는 소설이라는 공간을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신명나게 의사를 교환하는 그런 토론장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그는 아마도 소설이 지적 모험을 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생각하는 듯 싶다. 『부여에 죽다』에서 우리는 작가 장용학의 한국 고대사와 일본 고대사, 그리고 현대사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새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조직사회와 개인 사이의 긴장관계를 주로 회사를 무대로 삼아 즐겨 추구해온 이동하는 이번에는 『번제』(신동아)를 통해서 「게젤샤프트」 속에서의 개인간의 갈등을 극화해 보이고 있다.20여년간을 근속해 왔으면서도 상사한테나 동료들로 부터나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김만석은 하루아침에 총무주임에서 과장으로 승진되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회사에 충성을 표시하려 든다. 그는 불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한 「아이디어」의 하나로「올·코트·프레싱」전법(최소의 인원이 내근하고 최대의 인원이「세일즈」에 참가한다는 전법)을 고안해 내어 상사로부터 기대에 찬 허락을 받아낸다.
그러나 결국 김만석 과장은 동료들의 태만을 사장에게 고해 바쳤다는 이유로 많은 부하직원들과 동료들로부터 지탄을 받게된다. 이동하는 「게겔샤프트」의 흐름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치는 개개인 (회사원) 들의 심리상태를 과거 그 자신이 쓴 여느 소설의 경우에서보다도 더 치밀하게 파헤쳐 보인다. 사실 회사 생활이라든가, 회사원과 같은 소재는 자칫 소홀하게 다루면 김빠진 한담으로 떨어져 버리기 쉬울 만큼 그렇게 흔한 것이기는 하다. 흔한 소재일수록 소설화하는 과정에서 보다 더 많은 기교의 연금술이 요구되는 법이다.
유홍종의 『요나』(신동아)는 요즈음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른바 「영적 치유」의 실체를 알아보려 한 작품이다. 대학에서 화학을 강의하고있는 「나」는 악성 임파종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라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나」는 어느 날 저녁때 성당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바로 옆에 서 있던 요나 라는 여자를 알게 된다.
작가는 주술적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요나 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인물의 명명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었다. 요나는 「나」의 몸속에 있는 악귀의 존재를 감지하고는 그 악귀가 물러가길 빈다. 그녀와 관계를 맺고 난 후 「나」는 병이 빠져나간 것을 느낀다. 그리고는 영적 치유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곰곰 따져 보게 된다.
이제 유홍종은 신비적인 세계의 추구라는 독자적인 주제의식을 점차 굳혀가고 있는 듯 하다. <문학평론가· 건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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