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中, 사스환자 축소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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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세계보건기구(WHO)는 16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발병 원인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WHO의 사스 책임자인 클라우스 스토흐르 박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네바 WHO 본부에서 전세계 13개 연구소 소속 수석 연구원들이 참석해 열린 회의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감기의 병원균인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스의 발병 원인이라는 사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대학에서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사스 감염자는 16일 현재 31개국에서 3천5백29명이 발생해 1백55명이 사망했다.

한편 WHO는 이날 중국 정부가 자국 내 사스 감염자 및 사망자수를 축소 발표했다는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해 파문이 일고 있다.

WHO의 바이러스 전문가인 볼프강 프레이저 박사는 이날 베이징(北京)의 군(軍)병원들을 돌아본 뒤 "중국 정부가 사스 감염과 관련해 보고하지 않은 사례들이 발견돼 (숫자상)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베이징에서만 1백~2백건의 의심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WHO 관계자는 "베이징의 병원들에서 1천명 이상을 '관찰 중'이란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베이징시가 발표한 감염자 수는 이날 40명(사망자 4명)에 불과하다.

프레이저 박사는 이어 "군부가 자체 보고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 감염자 통계상 차이를 낳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WHO는 앞으로 중국 정부의 동의 아래 사스 감염자가 크게 늘어난 내륙 지역에 조사관들을 직접 파견할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의 사스 확산 기세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WHO가 이미 '사스 위험 지역'으로 경고한 광둥(廣東).산시(山西)성과 베이징은 물론 네이멍구(內蒙古).닝샤(寧夏)자치구 등 내륙 지역에까지 환자가 발생해 비상 상황이다. 홍콩의 명보(明報)는 "닝샤 자치구에서 의심환자 다섯명이 발견돼 사스가 농촌 지역까지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에선 이번 주 들어 "사스가 이미 만연됐다"는 루머가 나돌면서 한방 예방약과 마스크가 바닥나고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심리적인 공황상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스는 지금까지 중국.홍콩에서만 감염자의 76%인 2천6백68명(사망자 1백21명)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 WHO는 "사스가 말라리아.결핵 같은 법정 전염병이 될지를 판단하는 데 중국 측의 자료가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3~4주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신장.간장.심장 질환을 앓아온 환자와 노년층이 사스에 쉽게 걸린다는 가설도 흔들리고 있다. 홍콩 정부가 지난주 사스 발생 초기에 숨진 27명을 분석한 결과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이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지난 15일엔 아홉명의 사망자 중 30~40대가 다섯명을 차지해 중.장년층도 사스 안전층이 아님을 보여줬다.

의료 전문가들은 "사스를 유발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잇따라 생기는 것 같다"며 "변종들은 검사를 해도 쉽게 발견되지 않아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고 분석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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