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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휘관 시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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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두환 대통령은 55년9월30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된 이후 25년간의 장교 생활을 주로 지휘관으로 지냈다. 소대장·중대장·대대장·연대장·여단장·사단장·보안사령관등 지휘관의 정통 「코스」를 거친 것이다.

<「천하무적 부대」 만드는게 꿈>
지휘관으로서 그의 시종일관된 부대 훈은 「천하무적」으로 최고 최강의 부대가 되자는 것이다.
그의 천하제일의 「모토」는 비단 그가 지휘하는 부대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소령으로는 세계 제1의 소령, 연대장으로는 세계 제1의 연대장, 사단장으로는 세계 제1의 사단장이 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하고 연마했다.
군대 시절 전 대통령은 빈틈이 없는 치밀한 지휘관이었다. 그 치밀성은 「나폴레옹」 전기를 읽은 뒤 배운 철저한 「메모」 습성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말에 이듬해의 그림일기책에다 우선 전기별로 1년 계획을 자세히 써넣는다. 그리고 그 연간 계획과 수시로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지시와 일 처리를 하며, 지시를 한 경우에는 결과보고를 받을 날에 또 「메모」를 해둬 철저히 사후 「체크」를 한다.
「메모」할 여백이 모자라면 그때마다 백지를 붙여 꼼꼼하게 「메모」를 해두기 때문에 몇 년만 「메모」책을 모으면 훌륭한 부대 지휘 교범이 된다.

<무슨 일이나 빈틈없이 메모>
이 「메모」에 입각한 그의 부대 지휘 시절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강한 훈련을 통해 습관적으로 충성심 애국심 복종심이 생기도록 하라』 『군인은 이론보다 실행이 앞서야 한다』 『경리에서 거스름돈 1원, 4원 공제하는 일 없도록 하라』 『현금 차용 금지, 특히 상하간의 금전 거래 없도록 하라』등등….
따라서 참모들도 철저하게 「메모」를 해두는 습관을 익히게 된다.
참모들에게는 빈틈없는 근무를 요구하지만 지휘관에게는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둔다.
훈련을 할 때도 열흘이면 열흘 기간만 부여하고 훈련 내용은 중대장이 마음대로 하도록 해준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중대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더 효율적인 훈련이 되었다는게 전 대통령을 모셨던 부하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보직을 옮길 때마다 자기 사람을 데리고 다니지 않고 현지에서 예하 책임자에게 응분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주어 소신 있게 일할 여건을 만들어 준다. 그러니 가는 곳마다 새로이 마음으로부터 그를 따르는 부하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부하들에게 주는 맛에 산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부하들에게 정과 도움을 아낌없이 주었다.

<고된 훈련도 병사들과 함께>
연대장 시절에는 새벽 2시, 3시에 전방 관측소에 올라가 끓여 가지고 간 「코피」와 담배를 부하들에게 나눠주고, 교육 나가는 부하가 있으면 주머니를 털어 여비를 보태주었다.
사단장 때는 가급적이면 많은 병사들과 악수하고 하루 10명씩 우수 사병을 표창한다는 목표를 세워 실천했다. 표창시에는 표창장과 함께 휴가증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에 엄격하면서도 민주적인 지휘관이란 얘기를 들었다. 부대 전입 장교에게는 한달 동안 부대의 장단점을 연구해 발표토록 했는데 가혹할 정도로 비판을 하는 장교들을 좋아했다.
소신은 있지만 독선적이 아니어서 참모들의 활발한 토론과 의견을 들어 의사 결정을 하며, 일단 정해진 것도 다시 문제점이 지적돼 고치는게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방향 수정도 지체하지 않았다.
반공 교육 교안 같은 것은 전 부대원에게 『왜 공산당이 싫은가』를 작문하도록 해 각 제대별로 거르고 걸러 가장 설득력 있는 작품을 채택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상향적으로 지혜를 모은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반공 정신을 체득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는 배려에서였다.
지휘관으로서 솔선수범도 몸에 밴 습성이었다.

<「예외」 용서 않는 엄격함도>
공수 특전 여단장 시절에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두차례 10㎞씩 부대원 전원이 구보를 하도록 했는데 여단장이 항상 그 선두에 섰다. 낙하 훈련을 할 때는 장군도 함께 「점프」를 했다.
몸이 아파도 막사 의자에 앉아 고통을 이겨낼 지언정 결근을 한적이 한번도 없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만큼 부하들에게도 예의를 허용하지 않았다.
군목이나 군의관은 대개 예외를 시켜주는게 보통이었지만 전 대통령은 『군복을 입은 이상 모두 군인으로서 철저해야한다』는 원칙에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전 장군이 지휘관이던 부대의 군목이나 군의관은 새로 전임해 온 젊은 보병 장교들보다 구보를 더 잘했다.
월남에서 연대장 근무를 마치고 개선할 때 그의 손에는 갖고 떠났던 세면도구뿐이었다는 얘기는 그의 결벽을 드러내주는 일화다.
요즘 흔히 보는 사격 자세의 초병 근무 자세도 그가 창안한 것이다.
전 대통령은 이렇게 개혁의 의지도 놀라운 가장 지표적인 군 지휘관이었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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