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구타 … 육군 수뇌 석달 전에 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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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윤 일병 사건을 언제 보고받았나.”

▶한민구 국방부 장관=“보고를 받아 알게 된 게 아니고, 7월 31일 언론 보도를 보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4일 오후 국회 법사위원회 긴급현안보고회의에 출석한 한 장관은 28사단 윤모(20) 일병 사망 사건을 “언제 보고받았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말끝을 흐렸다. 한 장관은 청와대 안보실장에 임명된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후임으로 6월 30일 취임했다. 그런데도 한 달 동안 언론이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 윤 일병 사건에 대해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윤 일병은 4월 7일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로 사망했다. 군 검찰이 헌병 조사를 토대로 구타 가담자 6명을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한 건 5월 2일이다. 그런 만큼 적어도 5월 2일에는 군 검찰의 기소장을 통해 육군 지휘부 대부분이 “군대판 악마 같은 사건”(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실제로 기소장에는 “(윤 일병에게) 치약을 먹이거나 매일 야간 지속적인 폭행·가혹행위와 유모 하사의 폭행 방조행위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결과적으로 육군 지휘부는 최소한 석 달 이상 사건을 국방장관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은폐했다. 사건 당시 국방장관인 김관진 실장도 “사고 다음 날인 4월 8일 ‘육군 일병이 선임병 폭행에 의한 기도폐쇄로 사망했다’는 간단한 보고만 받았다”고 국방부 당국자는 전했다.

 육군이 윤 일병 사건을 고의로 은폐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5월 22일 1차 공판을 시작으로 재판이 세 차례나 진행됐지만 피해자 유족들에게 진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군 인권센터의 폭로로 실상이 공개된 뒤인 8월 1일에야 육군 검찰단장 등은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 ‘늑장’ 브리핑을 했다.

 김종대 디펜스 플러스 21 편집장은 “유가족과 군 인권센터의 공개가 없었으면 조용히 지나가려 했던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육군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군 검찰의 조사 직후 언론에 조사내용을 발표하려 했으나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22사단 총기 난사 사건(6월 21일) 등 굵직한 악재가 연이어 터지며 타이밍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때문에 윤 일병 사건을 덮었다는 의미다. 육군은 22사단 총기 난사사건 당시에도 언론에 내용이 공개된 뒤에야 브리핑장을 찾았다. 익명을 원한 예비역 장군은 “이쯤 되면 조직적이고 추악한 은폐”라 고 말했다.

 ◆뒤늦은 사과=한 장관은 4일 늦은 오후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반문명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예방·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윤 일병 사망 119일 만이다. 한 장관은 “가해자를 군 형법이 허용하는 최고 형량으로 엄중 조치하고, 28사단장(육사 40기·소장)을 보직해임한 뒤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것”이라며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군단장 등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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