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암의 정체는 무엇인가|이장규<암협회이사장·원자력병원장>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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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전 신문에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한국인의 사망원인별 분류표가 실린 일이 있다.
그 중에서 질병에 의한 사망율을 따로 떼어보면 순환기계질환(뇌혈관질환 및 고혈압)이 35.4%로 역시 1위를 차지하고있고 다음이 암(악성 신생물)으로 11.7%를 보이고있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일본을 비롯해 세계 모든 나라가 비슷한 경향으로 암에 의한 사망율이 계속 증가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어느 나라나 암이 사망원인 1위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암의 정체는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아직까지는 여기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암은 「세포의 병」이므로 끝없이 늘어나는 비정상적인 세포 때문에 결과적으로 생명을 잃게되는 것이라는 점만을 알뿐이다.
식물이나 동물이나를 막론하고 세포가 모여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다 잘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세포들은 세포 속에 내장되어 있는 설계도에 따라 질서있게 분열하고 증식하면서 생명체를 유지시켜 나간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질서가 깨어지면 세포는 무한히 분열을 계속하면서 소위 우리가 「미친 세포」라고 부르는 암세포로 변한다.
암세포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있다.
그 첫째는 때와 장소·인종·성별을 가리지 않고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아에서 노인까지 어느 연령에서나 암이 생길 수 있고, 백인이나 흑인이나 구분없이 암에 걸리며 머리카락과 손톱을 뺀 몸의 어느 부위에서 언제나 암은 생길 수 있다.
두번째 특징은 일단 암이 발생하면 저절로 낫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감기나 만일 염증 등은 병에 걸려도 우리 몸에서 만들어내는 항체 때문에 저절로 낫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암은 발생하면 점점 악화되는 쪽으로만 갈 뿐 되돌아 설 줄을 모른다.
세번째는 암은 발생초기에는 그것을 의식하거나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암은 일정한 잠복기간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감기에 걸릴 때의 재채기같이 어떤 증세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암만이 갖는 특정된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초기발견이 힘들다. 보통 암을 빨리 알아낸다고 해도 암세포가 10억개 이상으로 늘어나 덩어리를 형성했을 때에야 가능하다.
네번째 특징은 암세포가 혈액과 임파를 타고 신체 어느 곳이나 옮겨 다니면서 암세포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일반 질병이 대부분 어떤 특정부위에 발병하고 그 부위에서 끝나는 것에 반해 암세포는 제멋대로 이동하면서 여기저기 씨를 뿌린다. 그 때문에 어느 장기에 생긴 암을 제거해도 전이된 암이 다시 다른 부위에 암을 일으키는 등 암의 근치를 어렵게 하고 있다.
다섯째는 세포의 법을 일으킨다는 결과는 같지만 원인은 여럿이라는 점이다.
특정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입해서 번식하면 특정한 병이 발병한다. 그래서 어떤 병이 생겼다면 원인이 되는 세균을 알 수 있고 이를 없앰으로써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암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았지만 발병원인이 여러 가지로 생각되어 과연 어떤 기전으로 암이 생겼는지를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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