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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문화읽기] 아톰의 생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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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몇년 전 일본인 친구와 뉴욕에서 지하철을 탔다가 와이저(WISOR)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뉴욕 지하철이 오래되다 보니 지하 파이프에 녹이 슬거나 구멍이 생긴 경우가 많아 보수공사를 해야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하 온도가 1백도 가까이 돼 사람이 내려가 고칠 수가 없어 로봇을 고용해 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무게 3백50㎏에 덤벨처럼 생긴 파이프 수리공 로봇 '와이저'가 파이프 속을 돌아다니며 구멍난 곳을 자동 수리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일본인 친구는 만약 와이저 개발자가 일본인이었다면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파이프 속을 기어다니게 했을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본 사람들은 비효율적이더라도 '로봇'을 사람모양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는데, 친근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아톰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면서 말이다.

1952년 일본의 만화가 데쓰카 오사무에 의해 탄생된 철완 아톰은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이다. 가슴에 하트 모양의 전자 두뇌가 들어 있어 이를 통해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악당과 싸우다가 목이 졸리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까지 인간을 쏙 빼닮았다.

아톰은 흔히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 일본인들을 일으켜 세운 '전후 부흥의 상징'으로 통한다.

핵무기로 대표되는 서구의 과학기술에 무참히 무너진 일본이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기술을 통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일본인들의 가슴에 새겨놓은 것이다.

원자력 심장을 이용한 10만 마력의 힘,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로켓 분사기, 1㎞ 안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등 아톰의 재능은 놀라울 정도지만, 그 중에서도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을 한눈에 구분하는 것은 아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전후 일본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킨 아톰은 '과학문화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성공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실제로 일본이 로봇공학 분야에서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데는 아톰의 영향이 컸다. 97년 일본 혼다에서 개발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인간형 로봇 아시모(ASIMO)는 일본인들이 아톰을 만화 밖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몸무게 50kg 정도의 반자동 로봇인 아시모는 인간에 가장 가까운 걸음걸이를 선보여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03년 4월 7일은 만화 속에서 아톰이 태어난 것으로 돼 있는 날이다. 요코하마에서는 4월 3일부터 6일까지 'ROBODEX 2003'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로봇박람회가 열렸다.

아톰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데쓰카 프로덕션이 위치한 사이타마현에서는 아톰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주었다.

또 아사히신문은 지구의 미래와 꿈, 희망을 지켜야 한다는 아톰 선언을 7일자에 발표했다. 아톰이 태어난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 아톰은 전세계인들의 가슴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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