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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과잉보호 독립심을 앗아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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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도무지 시간이 있어야지. 「스케줄」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고 확답을 할게-.』 서울 A초등학교 5학년 김모군이 친구들의 놀이 초대를 받고 이 같은 「애늙은이」 같은 대답을 했다. 김군은 우스게소리를 한것이 아니다.
김군의 하루 일과는 어머니에 의해 빈틈없이 꽉짜여져 있어서 이런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군의 「케이스」로 우리는 최근 우리나라 도시 중류이상 가정 자녀들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김군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천재가 되고 초인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김군은 특별히 「바이얼린」교습을 받아야하고 태권도 도장에 다니며 영어과외공부까지 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치열교정과 시력교정을 위해 정기적으로 의사들과 시간을 맞추는 「스케줄」이 끼어있다. 김군에겐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을뿐더러 부모의 기대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야 한다.
5인 가족의 가장인 「샐러리맨」 박태식씨(42)는 고둥학교 다니는 아들과 중학교와 국민학교에 다니는 딸 두명이 있다.
『우리 집은 마치 학습도장과 같아서 아이를 충심으로 모든 것이 짜여진다』고 박씨는 투덜댄 적이 있다. 어쩌다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 푸념이라도 늘어놓자면『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아내가 엄중항의한다는 것이다.
『왜 세상에는 이처럼 지독한 경쟁의식만 있어야 하는지』바로 그점이 불만이라고 박씨는 털어놓았다.
김군의 예와 박씨의 불만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있다.
현대의 부모는 자녀의 물질적인 욕구를 끝없이 만족시켜 주는 것을 의무로 착각하고 있는것 같다고 유안진교수(단국대·교육학)는 말한다.
절제심이나 인내심은 어려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며 그 시기를 놓친다면 성장한 후의 심리적 갈등이 더욱 두드러질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체로 핵가족에서 자란 어린이는 독립심이 강하고 대가족속에서 자란 어린이는 창의성이 발달한다고 학자들은 지적해왔다. 그러나 핵가족화가 이루어 지고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부모들이 자녀의 독립심을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와있다.
행동과학연구소가 39세 미만의 주부5백61명믈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의 어머니상(허경철·이용남공동조사)을 보면 그들은 자녀에게 지나친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이 지나친 관심과 애정은 자녀들을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만들어 독립심을 키워주지 못하게된다는 풀이다.
자녀들이 어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성장은 느릴수밖에 없다. 『자식은 바로 내 꿈이다』 라는 식의 경신은 일종의 자기희생이라고도 풀이되지만 사실은 자기인생이 없다고 느낀 어머니가 자녀를 통해 자기를 실현하려하는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이동원교수(이대·사회학)는 말한다.
지나친 경쟁의식. 그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모의 기대, 이웃과의 단절 등들은 바로 자녀들에게 꼭 가르쳐야할 인격교육·가정교육·정서교육의 결핍현상을 가져오고 있다.
『싸워서 꼭 이겨야 한다』는 식의 교육은 어딘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지적이기도하다.「페어·플레이」하는 「스포츠」정신은 이 같은 경쟁의식을 바로잡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손인실씨(한국YWCA연합회회장)는 몇번인가 강조했다. 동네단위로 「스포츠팀」을 만들어 정기적인 「게임」을 하게하는 등의 방법이 좋다는 제안이다.
또 유안진교수는 어린이가 밖에서 친구들과 싸우고 고독한 입장에 서서 집으로 돌아올때 하소연할 수 있는 가족이 집에 있다면 바로 그것이 든든한 심리적인 배경이 되어 정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로 이같은 점을 전통적인 가정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캘릴·주브란」은 『예언자』에서 『자녀란 너를 통해서 왔을 뿐이지 네 소유가 아니다』라고 했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속에 몇명 안되는 자녀의 인생을 묶어 둘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환경에서 참다운 애정이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주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시리즈」②의 미국유학부부 사례는 시인 안혜초씨의 수필에서 인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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