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학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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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언젠가 「카네기」가 사원을 채용하는 시험으로 짐을 꾸린 끈을 풀도록 했다.
대부분의 응모자는 끈을 정성스레 풀어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낙방이었다.
가위로 쌍둥 잘라버린 응모자만이 합격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카네기」는 대답하기를 『우리는「스피드」시대를 살고 있다오.』
짐짝을 묶은 끈은 짐을 풀어야할 때 이미 쓸모가 없어진다.
따라서 끈을 어떻게 푸느냐는 건 논제가 되지 않는다. 「스피드」의 시대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끈 그 자체에 집착한다. 그래서 끈을 시원스럽게 풀지 못하는 수가 많다.
혹은 「카네기」도 「알렉산더」대왕의 고사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알렉산더」가 소「아시아」의 고도 「골디우스」에 도착했을 때였다. 신전의 기둥에 마차 한대가 매우 단단히 끈으로 묶여있었다.
『「골디온」의 매듭』이라는 것이었다. 이 매듭을 푸는 자는 온 세계의 왕이 된다는 예언이 여기에 담겨 있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이를 풀지 못했다. 이 얘기를 들은 「알렉산더」는 칼로 단숨에 매듭을 잘라 버렸다.
다른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이번 과외수업 폐지를 위한 일련의 결단은 꼭 단숨에 잘린 「골디온」의 매듭과도 같다.
나머지 문제들이야 별게 아니다. 하다보면 얼마든지 묘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넓어진 문도 그렇다. 가령 영국에서는 같은 학사도 제l급과 제2급상, 제2급하, 제3급의 넷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따라서 취직할 때 이력서에 『케임브리지』대학학사(제3급·수학전공)』이라든가 『「런던」대학(제2급상·경제학전공)』이라고 밝히게된다.
이런 학사의 급수를 공평하게 매기기 위해서 졸업시험도 다른 대학의 교수들과 함께 출제하고 답안도 돌려가며 본다.
따라서 자기 학교 교수가 제1급으로 올려놔도 다른 대학에서 파견 나온 채점위원이 『이건 우리 대학이라면 제2급감 밖에 안되겠다』고 트집 잡히는 수 도 있다.
이래서 「옥스퍼드」대학과 「런던」대학이 평준화되고 「런던」과 「맨치스터」가 평준화된다.
이리하여 「옥스퍼드」대학의 3급 학사보다 「맨치스터」대학의 1급 학사가 더 높이 평가된다.
물론 「옥스퍼드」나「케임브리지」대학은 아직도 명문교로 통하고있다. 그건 과거의 명성에서가 아니다. 제1급 학사들을 많이 배출한다는 이유에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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