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 시원한 솔밭 속의 무대 강원도 연곡해수욕장의|80해변 천막극장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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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가 가르쳐 드리지. 다른 놈들이 우릴 잡으면 우선 선장에게 데리고 갈거요.』 『하지만 난 문제없소. 배를 타기 전 선장에게 두둑히 돈을 주었으니까. 』 밖에는 제법 세찬 빗소리와 간이 오락장에서 틀어 놓은 최신유행가 소리가 자욱한데 45평 남짓한 원형천막 안에는 「해변에서의 연극과 낭만」을 즐기려는 관객과 배우들의 호흡이 열기를 뿜는다.
무대 위의 연극은 다섯 명의 인생밀항자가 벌이는 출발과 귀환의 희극적 오중주 『다섯』(이강백작 윤주상연출). 「가교」「민예」「민중」「현대」「76」등 다섯 극단이 차례로 펼치는 「80해변천막극장 연극잔치」의 첫 번째 공연이다.
연극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강원도 명주군 연곡면 연곡해수욕장. 강릉에서 북방 12㎞이니까 「버스」로 15분 남짓한 거리다.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고 천연송림이 우거진 경치가 마음에 들었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
아직 본격 「시즌」이 아닌데도 휴강중인 대학생들이 내려와 있었고 오락장·「샤워」장·가게·술집 등이 7월 말부터 몰려들 손님 채비에 부산한 모습이었다.
천막극장이 자리잡은 곳은 해변가에서 조금 들어와 있는 송림 한 가운데. 모래밭에 천막을 쳐놓으면 바람과 파도소리에 배우의 대사가 가려지고 자칫 천막이 센바람에 날려갈 염려가 있기 때문.
17일 저녁 첫 공연을 보러온 관객은 대학생들 외에도 현지주민, 또는 해수욕장의 각종 부대시설을 움직이는 종업원들이 많았다.
해수욕장 곳곳에 세워져 있는 천막극장 광고판과 관리소 측의 안내방송을 듣고 찾아왔다는 송민숙씨(45)는 연극 관람 후『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20여년만에 처음하는 연극구경이 상당히 즐거운 표정.
「아르바이트」로 분식「센터」를 운영, 회비에 보태 쓰겠다는 동국대학생들은 『바닷가에서 보는 연극은 상당히 색다른 맛을 준다』고 했다.
움직이는 소극장 천막극장이 만들어진 것은 73년5월, 『천막이나마 우리극장을 갖고 싶다』는 극단「가교」단원들의 소망에 의해서였다.
「관객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피서객들에게 정신적인 휴양소를 제공하며」「무대예술의 중앙집중현상을 타개하는 이동 소극장으로서」「연극인들의 여름 휴식처로서」이용하자는 게 천막극장의 제작의도.
지금까지 대천해수욕장(73년) 도봉산 산장 극장(74년) 경포대해수욕장(75년) 경기도 일영 명지「풀」장 등을 돌며 공연을 해왔는데 약장수 일행이나 「서커스」단으로 오인 받은 것도 여러 번. 실제로 17일 공연에도 공짜구경이면 안 하겠다고 버티는 관객이 더러 있어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천막극장 연극잔치」의 총기획을 맡은 손진책씨(연출가·극단 「민예」) 는 『천막극장에 우연히 들렀다가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75년 경포대 공연 때는 땅값을 못내 헐릴 위기에 처했던 강릉의 임시학교 풍오중학을 공연수익금 1백20만원을 몽땅 투자, 회생시킨 적도 있다.
『극단「가교」라는 이름대로 가교역할을 한 셈이죠.』 천막극장 초기부터 천막극장과 관계해 온 연극배우 윤문식씨의 얘기다.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에서의 연극」 천막극장은 8월10일까지 계속된다.(글 이덕규기자 사진 김주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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