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 돈줄을 본격적으로 죄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기업·금융회사들이 유럽 금융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했다.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에 따른 후속 조치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길은 아직 막지 않았다. 적잖은 서방 전문가들은 이번 제재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의 돈줄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해서다.
터무니없는 지적은 아니다. 서방이 올 3월 경제제재에 나선 이후 외국 자본 650억 달러 정도가 러시아를 빠져나갔다. 그 여파로 러시아 경제는 사실상 침체에 빠졌다. 그런데도 푸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지지율은 80%를 웃돌고 있다. 서방 제재가 러시아 특유의 애국심에 불을 붙인 셈이다.
그러나 ‘열정은 짧고 고통은 길다’고 했다. 애국심은 침체가 낳은 고통보다 오래갈 수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러시아 자금 사정을 보면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기업·금융회사들이 2015~2017년 3년 동안 갚아야 할 돈은 모두 247억 달러(약 25조4400억원)다. 이 가운데 루블화가 아닌 달러·유로 등 외화로 꾼 돈이 150억 달러나 된다. 이 빚은 루블화로 갚을 수 없다. 해외에서 벌어오거나 꾼 돈으로 상환해야 한다.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러 정부와 기업들이 보유한 현찰에 기대 올해는 넘길 수 있지만 내년부턴 자금난, 특히 외화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남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