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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진보교육감 걱정 말라던 조희연 교육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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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신 진
사회부문 기자

지난 30일 오후 2시. 검은 셔츠를 입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학부모연합회 회원 8명이 서울시교육청 9층 회의실에 들어섰다. ‘자사고 폐지 결사 반대’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른 학부모들은 “왜 우리 아이가 개혁의 희생양이 돼야 하냐”고 항의했다. 이들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청하는 악수도 거절했다. 일부는 눈물을 쏟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1일 출범 한 달을 맞은 ‘조희연호(號)’가 암초를 만났다. 조 교육감이 추진하는 자사고 폐지 정책에 자사고 학부모와 교장단, 동문까지 집단 반발하며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그는 “개혁엔 진통이 따른다. 피해가 크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자사고 학부모들은 “폐지 방침을 철회할 때까지 집회를 계속하겠다”며 얼굴을 붉힌 채 교육청을 떠났다.

 조 교육감이 이들을 만난 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자사고 학부모들의 면담 요구를 조 교육감이 받아들여 성사됐다. 한 교육청 직원은 “조 교육감은 전임자들에 비해 전향적으로 소통에 나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취임 후 의전 차량을 에쿠스에서 카니발로 바꿨다. 직원들에겐 “교육감이 출근한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엘리베이터 버튼도 눌러주지 말라”고 하는 등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다. 같은 자리에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며 탁자를 일렬로 배치한 뒤 직원들과 나란히 앉아 회의를 한다. 취임 초 보수성향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선 50분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선 10분을 머문 것도 신중한 행보로 읽혔다. 간부회의에선 전교조가 법외노조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조퇴투쟁을 벌이는 데 대해 조 교육감이 “퇴근 후나 휴일에 해도 되는데 조퇴까지 하느냐”며 비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교육청 공무원들 사이에선 “취임하자마자 바꾸려고만 했던 곽노현 전 교육감과는 다른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그런 그가 유독 자사고 폐지에는 다소 독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취임 전 평가가 끝난 14개 자사고를 재평가하겠다며 만든 ‘공교육 영향평가’는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시기를 2016년으로 미뤘지만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공약이니 빨리 시행하겠다”는 조급함이 앞선 건 아닌지 우려된다.

 자사고 폐지라는 명목만 좇지 말고 일반고를 살리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본인은 두 자녀를 외고에 보냈으면서 왜 우리 아이들은 (더 많이 배우면) 안 되느냐”는 자사고 학부모의 질문에도 떳떳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조 교육감은 취임 직후 “진보교육감의 등장에 걱정하지 말라. 나를 찍지 않은 유권자들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며 천천히 가겠다”고 말했다. 취임 한 달을 맞아 그 말을 되새겼으면 한다.

신진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