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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돌을 찾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사동 「화안」이라는 가게에 동자석 한 쌍이 있었다. 쌍 중 얼굴에 앙팽이를 잔뜩 그린 작자가 나를 건너다보았다. 눈가에 세월에 전 동그라미 테가 아쭈! 무테안경을 쓴 것 같았다.
삼륜차에 그 작자를 싣고 와서 나는 같이 살고 있다.
요 근래 들에만 눈독을 들이고 다녔더니 시선이 가 닿는 사물이 돌만 같아 보였다.
꽃집의 키꺽다리 「글라디올러스」도, 할아버지가 거리에 늘어놓고 파는 대통붓도 구둣가게 진열장에 놓은 눈(설)같은 숙년화도 돌 같다.
돌은 바람에 시달리거나 비에 젖거나 전지전능하신 주먹이 있다면, 만일 그런 주먹이 있다 손치더라도 내리치면 손만 아플뿐 그떡 안하니 과묵하고 점잖다.
나는 여태까지 세상을 앵앵거리거나 바둥거리며 살아왔는데 돌을 만나고 나서 진중 거만한 침묵에 반해버렸다.
내가 삼륜차에 싣고 온 작자는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잠깐, 그것도 아주 짧은 사이에 히쭉 웃곤 한다.
지지난 주일인가 『엄마의 집』이란 TV주말영화를 보면서 나는 화면에 나오는 일곱 남매가 그렇게 내 혈육같이 자랑스럽자 가련해 보일 수가 없었고 차남으로 나오던 눈이 큰아이가 지금은 엄마 곁으로 간 우리 막내 같아 갑자기 내 근육은 돌같이 딴딴하게 굳어졌다.
별거하던 아내가 죽자 아이들이 있는 옛 집으로 기어 들어와 제 버릇 남주랴는 듯이 아내의 연금통장을 빼내어 탕진하고 창녀를 집안에 끌어들이며 아이들을 구박하던 생부인 건달에게 『저런, 말못할 망종이군!』나는 혀를 차고 2층으로 올라와 막내가 보낸 엽서를 읽었다.
『편지를 자꾸 쓰라고 엄마가 야단쳐서 쓰는데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계속 후텁지근하고 만사가 두루 시들한 이 여름에도 아이들만은 천사 같다는 생각을 할 때 어디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돌이 소리를 내는 건 처음 듣는다. 비록 환청이긴 해도. <글·그림 김영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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