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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국 교육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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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신호
건양대 석좌교수
전 대전시교육감

온 국민이 지켜본 교육부총리 청문회의 참담한 모습은 오늘날 한국 교육을 주도하는 교육 브레인 그룹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국 교육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전조현상이다. 지금까지 교육부가 추진한 대학 구조조정, 대입 간소화, 영어 사교육 대책, 선행학습금지법, 자유학기제 등은 어설프기 짝이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낳고 있다. 일선 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청과 대학들이 불만으로 가득하다. 현재 교육부는 대통령과 국민의 기대치를 안심할 정도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오죽 답답하면 대통령까지 나서 선행학습 문제, 안현수 신드롬, 교복 값, 대학 신입생 환영회, 수학여행 등 세세한 문제까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장면을 보이겠는가. 모든 것이 불안하다는 의미다.

 교육부는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정책들의 적폐를 설거지하기도 바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또 다른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문제되는 사안만 임시 처방할 때도 많다. 목전에 당면한 수많은 과제, 역사교과서 문제, 대학입시제도 간소화, 대학 구조조정, 영어 사교육 대책,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초등 돌봄교실, 시간선택제 교사, 자유학기제 운영, 선행학습금지법, 고교 문·이과 구분 교육, 사교육 경감, 교과서 가격 문제, 학생 안전교육 등 어느 것 하나 깔끔하게 정리된 사안이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진영 교육감들이 대거 등장했다. 앞으로 중앙정부와 시·도 교육감들의 예견된 마찰도 걱정스럽다. 정부의 교육사업 예산 떠넘기기와 무상교육 과잉으로 인한 시·도 교육청의 예산 고갈 문제도 심각하다. 벌써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혁신학교, 고교 평준화 확대, 자율형 사립고 폐지, 대입 평준화, 무상교육 및 교육복지 강화, 친일·독재 교과서 반대, 전교조의 법외 노조 문제 등으로 예리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교육계가 똘똘 뭉쳐 협력해도 난제를 풀기 어려울 판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수많은 혼선을 정리하려면 교육부는 우선 초정권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할 교육정책의 장기적 청사진과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역사를 후퇴시키고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에게 고통을 주는 일만은 없도록 해야 한다. 또 국가 수준의 정책기획과 집행, 행·재정적 지원, 세계 교육의 정보 제공, 경영평가, 감사만 하고 시·도 교육감들에게 자율권과 재량권을 대폭 허용하되 책임을 지도록 해 창의적 경영을 유도해야 한다. 교육감들을 국가 교육경영의 주요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부여된 법적 권한을 존중함은 물론 적극적으로 소통해 교육 발전이라는 국가 공동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지난 정부의 실패한 정책들을 과감히 청산하고 박근혜 정부의 3대 교육브랜드인 창의융합교육·인성교육·행복교육의 실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진보 진영 교육감들도 이념에 치우쳐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먼저 준법을 가르치는 교육지도자로서 법치행정에 솔선해야 한다. 인사권·행정권·재정권을 독점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지방교육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중앙정부가 정한 교육정책 범위 안에서 법령이 허용하는 집행권만 행사해야 함을 유념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담보할 교육에 어설픈 실험이나 시행착오는 용납될 수 없다. 이 시대에 현존하는 어떤 교육 제도나 정책도 대부분 검증돼 있다. 굳이 값비싼 시행착오의 사회적 비용을 치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교육이 우리에게 경외로운 천년지대계라 할진대 누구도 함부로 경솔히 다루어선 안 된다. 또 자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그 이유와 가치에 충실하고 시대적 소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교육감은 4년 기간제 계약직과 다름없다.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교육권을 경도된 시각으로 남용하거나 개인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금물이며, 이는 헌법정신에 반하는 일이다. 개인이 특정 이념이나 가치를 선호할 수 있으나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가치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검증되지 않은 편향적 교육으로 올바른 교육을 받을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순수한 영혼을 오염시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아직도 세계인들은 한국 교육을 부러워하고 있다. 학력 수준, 교사의 질, 교육환경, 교사의 헌신성, 수업기술, 학부모의 교육열은 명실공히 세계 제일이다. 학업성취도국제비교연구(PISA)와 수학·과학성취도비교연구(TIMSS)가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는 우리 한국 학생들이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의 학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문제는 우리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고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는 모름지기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호기심과 동기를 부여하며, 소질과 적성과 잠재력을 키워주는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행복한 배움터이어야 하지 않겠나? 교육천국(Edutopia)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교육지도자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제발 실수나 하지 말기 바란다.

김신호 건양대 석좌교수 전 대전시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