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정치인생에 큰 벽에 부딪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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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의 사나이’로 불리며 3번째 보궐선거 당선을 통한 화려한 복귀를 노렸던 손학규 상임고문은 정치인생의 큰 벽에 부딪혔다.

손 후보가 정계에 진출한 첫 무대는 1993년 경기 광명 보궐선거였다. 배지를 달지 못한 원외 당 대표이던 2011년엔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불리던 분당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상대가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였다. 이번 선거는 그의 3번째 보선 도전이다. 당선되면 5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3번을 보궐선거로 국회로 입성한 기록을 세우게 될 상황이었다.

“가장 어려운 지역에 출마하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남경필 경기지사가 5선을 했던 수원병(팔달)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과는 45%대 52.8% 패배였다.

손 후보는 처음부터 당지도부의 지원을 거부하고 독자행보를 했다. 당내에선 “마지막 대권도전을 위한 행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손 후보는 선거 막판 “팔달은 50년간 한번도 야당을 뽑은 적이 없다. 여기가 진짜 사지다”라고 토로했고, 토로는 현실이 됐다.

손 후보는 많은 사람을 만나기보다 깊이 만났다. 전략이었다. 김유정 대변인은 “한 사람을 만나도 시장판에 함께 앉아서라도 내 사람을 만들어내는 게 손 후보의 능력”이라며 “이번 선거는 온전히 손 후보 개인의 힘으로 치러낸 선거”라고 했다. 하지만 수원정의 투표율은 30.8%에 그쳤다.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손 후보가 지역에서 돌풍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 신인인 김용남 당선자에게 패했다는 점은 뼈아프다. 지난 2011년 4ㆍ27 보궐선거에서 분당을에 당선됐을 때 그는 각광을 받았다. 야당의 사지였던데다, 상대가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였기 때문이다. 당시 투표율은 49%가 넘었다. 손 후보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손 후보의 당락은 김한길ㆍ안철수 체제의 유지여부와도 직결된 문제였다. 수원병에서 패배할 경우 새정치연합이 목표로 제시했던 6석 확보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안 대표는 손 후보를 지원하는데 소극적이었다. 당내에서는 “당내 지지기반이 겹치는 안 대표가 손 후보를 처음부터 견제했다”는 말도 나왔다. 손 후보의 패배로 손 후보 본인은 물론 안 대표의 거취에까지 먹구름이 끼었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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