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 보고펀드서 퇴진 … LG실트론 투자 실패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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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변양호(사진) 보고펀드 공동대표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엘리트 경제관료로 승승장구하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에 큰 홍역을 치렀던 그다. 이후 세계적인 토종 사모펀드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이번엔 투자 실패가 그의 꿈을 꺾었다. 29일 변 대표는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LG실트론 투자 문제와 관련해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보고 1호 사모펀드(PEF, 이하 보고펀드 1호)는 2007년 LG실트론 지분(29.4%)을 인수했다. 인수자금 중 2250억원을 금융권 대출로 조달했다. 하지만 LG실트론의 상장이 무산되면서 투자 자금을 회수하지 못했고, 결국 25일 국내 첫 ‘인수금융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했다. 변 대표는 “투자자와 채권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변 대표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 시절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다가 미국계 론스타펀드와 결탁해 헐값 매각을 했다는 혐의로 2006년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 그는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관료 사회에는 민감한 정책의 결정을 꺼리는 보신주의가 퍼지는 후유증이 나타났다.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다. 2005년 공직을 떠난 그는 보고펀드를 설립, 비씨카드·동양생명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사모펀드 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이번 투자 실패로 그는 또 한 번 법정싸움을 벌여야 할 처지가 됐다. 현재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최대주주인 ㈜LG와 경영진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상장이 무산된 데 LG 측의 잘못도 있다는 게 보고펀드 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LG그룹은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며 발끈하고 있다. 2011년 상장을 검토했지만 유럽 재정위기, 일본 지진 등의 여파에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며 결국 접었던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LG 관계자는 “보고펀드 측이 LG실트론의 지분을 현재 기업가치보다 훨씬 높게 사달라며 LG 경영진의 배임을 강요하기도 했다”면서 “배임 강요 및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보고펀드=한국 최초의 사모투자 전문회사다. ‘외국 펀드에 대항하는 토종펀드’라는 의미에서 사명도 해상왕 장보고에서 따왔다. 2007년 아이리버를 시작으로 비씨카드·버거킹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국내 대표 사모펀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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