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홍강의(서울대병원·소아정신과)-말하기도 어울리기도 싫어하는 「유아 자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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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진찰이 끝났다 싶을 때 던지는 『도대체 우리 아이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좌절과 실망, 그리고 얼마쯤은 분노에 찬 부모들의 표정을 볼때마다 의사는 또 한가정의 비극을 보게된다.
유아기의 정신질환은 다른 병과는 달리 온 가정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부모는 물론 다른 형제들 사이에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더라도 가정 내에서 맘대로 떠들거나 웃지도 못하고 그저 침울한 분위기만이 계속된다. 경우에 따라선 가족구성원의 성격마저도 바꿔놓는다.
이러한 질환증에 유아자폐증이라는 것이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철이는 8세 된 남아로 신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고 잘 생겼다. 학교는 못 가지만 한글도 알고 심지어 한자나 영어까지도 제법 읽는다.
고성의 특유한 발음으로 남이 하는 말을 흉내는 내지만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안되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혼자 차바퀴만 돌리고 논다.
철이는 4세까지 전혀 말을 못했고 엄마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안아주는 것도 싫어했다. 유치원·국민학교를 보냈으나 적응이 안돼 병원을 전전하다가 최근 유아자폐증의 진단을 받았다.
유아자폐증은 1만명당2∼4명 정도의 드문 발달장애로 남아에서 3∼4배 많이 나타난다. 증상이 3세 이전에 나타나기 때문에 유아자폐증이란 이름이 붙었다.
자폐증 어린이 4분의 1에서는 정상적인 아이와 비슷한 지능을 보이나 4분의 3에서는 낮은 지능을 보인다. 때로는 철이처럼 언어나 물건을 만지는 것 등 한 분야에서·특출한 재주를 보여 『천재가 났다』든가 고동소리를 듣기도 한다.
자폐증은 타인과의 인간접촉이 이뤄지지 않고 언어발달에 심한 장애를 보여 말을 못하거나 말을 하더라도 특유한 고성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 괴상한 행동을 되풀이하며 환경의 변화와 배우는데 저항감이 큰 것이 특징이다. 마치 인간접촉에 담을 쌓고 자기세계를 구축하여 혼자만 살려는 듯이 보인다.
이들은 신체발달은 정상이라는 점에서 정박아와 구분되며 애정결핍으로 오는 증상과도 구별되는데 애정결핍의 경우는 오히려 인간접촉을 갈구하는데 반해 자폐증은 극력 피한다.
자폐증의 원인은 처음고도산업사회에 많고 지은·교육수준이 높으면서 쌀쌀한 부모가 있는 가정에 많이 발생돼 애정결핍이 이유로 거론되었으나 입증되지 않았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원인으로는 역시 뇌기능 장애, 특히 청각과 언어중추연결의 이상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상적으로 보면 이들은 언어·사고·사회성·동작성 등 중복장애자이기 때문에 치료도 한가지가 아닌 전면적인 접근방법이 요구된다.
우선 이들의 자폐적 방벽을 깨고 들어가 인간접촉의 기쁨을 맛보게 하고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이루어지도록 유두 한다. 때로는 놀이요법 등 치료자와 자폐아와의 인간관계형성을 시도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인간접촉이 이뤄지면 언어·지각·운동발달을 도와주어야 한다. 치료는 장기간을 요하므로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인내가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동들을 도와줄 특수치료소가 설립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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