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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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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일 밤11시30분쯤에는 광주역앞에서 탈취한「버스」로 계엄군에 돌진, 계엄군2명이 중상을 입었다.
20일밤 광주세무서 방화때 무기고를 털어갔다.

<21일>
21일날이밝자군용「지프」7대,「트럭」6대, 민간차량 수십대를 탈취, 시내를 누비면서 시위군중을 규합했으며 시내외교통과철도·고속「버스」는 완전마비되었다. 도청은 3개방면에서군·경과 대치, 고립상태에놓였다.
치안은 완전 마비사태에있다.
광주역에 몰려간 대기중이던 기관차 1량과 객차11량 전량의 유리창을 파손하고 금남로4가 금성「센터」의 상품도모두 불태웠다.
21일상오10시현재 시위학생들은 계엄군 지휘관「지프」차 3대를 포함한 군용차외에 소방차, 장의차, 고속「버스」등 탈취, 차를타고 시위를벌이고 있다.
휘발유가 바닥나면 주유소를 털고 배가고프면 식료품상을 기습 탈취하는등 파격행동으로 바꾸어졌다.
상오10시쯤아세아자동차공장에 난입 군용「트럭」10대, 장갑차1대,「트레일러」1대등 1백여대를 강취해 광주시내로 끌고나와 운행했으며 이날상오10시20부분터30분까지 10분동안 광주고속앞길을통과한운행한차량을보면「크레인」차2대,「지프」10대, 군「트럭」20대, 일반「버스」3대, 고속「버스」4대, 일반「트럭」2대, 장의차1대,「미니버스」1대, 승용차1대등 42대나 통과하는등 광주시내 전역은 탈취한 차량이 학생들을 가득태우고 곤봉과쇠갈구리총을 휘두르며 군가를 부르고 누비고 다녔다. 이들 차량이 울리는 경적소리가 광주시내에 비명처럼 울려퍼졌다. 상오11시30분 각종차량에 탄 시내전역에서 계속됐으며 군중이금남로3가 노동청앞 광주은행남부지점 충장로1가등에 몰려 도청앞에 대치한 군경과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이에앞서 상오 9시55분 장형태 전남지사와 구룡상광주시장이「데모」군중 요청으로 금남로3가에 나와 시민을 설득하려고 접근을 시도했으나 군중들이 돌과 병을던지는 바람에실패했다.
「페퍼포그」차까지 탈취운행했다.
탈취한 장갑차「군트럭」고속「버스」「택시」등을앞세운 8천여명의 시민·학생들이 도청앞 광장을향해 전진해오자 장갑차를 앞세운 군부대가 도청정문앞쪽으로 밀리면서 가운데 일부가 이날 하오1시쯤 광주시내 방림동에 있는 경찰예비군무기고를점거, 2백여명이M1과 실탄을 갖고 광주시내에 나와 총을 들고 시위를 했다.
하오2시 계엄군이 도청 앞광장을 둘러싸고 장갑차가 간헐적으로 총을 쏘는 가운데 「헬」기 5대가 공중에서 시민해산을 호소하는 방송을 하면서 전단을 뿌렸다.
전단내용은 다음과같다.
「호소문」
『광주시민여러분,
어제밤에는 일부 시위군중의 난동으로 인하여 십명의 군·경이 사상되고 경찰서를 비롯한 일부관공서와 3개 방송국이 파괴되고 불태워졌습니다. 뿐만아니라 상당수의 시위군중도 다친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민여러분 이래서야 되겠읍니까.
우리 모두자제하고즉시귀가합시다. 더이상의 혼란은 우리 광주시민에게 더한 불행만을초래합니다. 더 이상 주저말고 즉시 귀가합시다.
질서회복을위해 모든 시민이 합심 노력합시다.
1980년5월21일
전남북계엄분소장 육군중장 윤홍정』
하오4시30분 도청을 중심한 금남로1가에서5가도청옆노동청·도청뒤, 그리고 광주은행남부지점 도청앞충장로1∼3가등은 상오중의 소요와는달리 쥐죽은듯 고요해졌다. 화순탄광에서「다이너마이트」를 대량가져와 도청과 전남일보·전남매일신문을 폭파하겠다고 준비를 서두르기도했다.「헬」기에「카빈」총을쏘기도했다.
하오 4시현재 도청부근주민들은 모두 소개했다.
하오11시쯤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귀가할것을 종용하는 방송을 하자 2만여명의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들은 공설운동장에 모여 작전조를 펀성하고 다시 가두로나와 밤새도록 공포를 쏘며 시가지를 몰려다녔다. 또 이날밤 일부 이들은탈취한 장갑차를 앞세우고 무기를들고 광주시근교 광주교도소로 몰려가 경비중이던 계엄군과 3차례나 총격전을 벌었다. 이 교전에서 10여명이 부상했고 계엄군은 장갑차를 회수했다.

<22일>
철야시위를 벌인상오5시쯤 송정리소재삼양「타이어」회사에 불을 질러이일대가 불바다로 변했다.
같은 시간에 함평군에서는 예비군대대에 접근, 총6발을 쏘며 실탄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완도군에서는 30여명의 군청을 점령,『시민궐기하라』고「앰프」방송을 했다. 또 완도경찰서 기물을 파괴하기도했다.
이시간에 영광에는 고창방향에서「트럭」2대에 나눠타고 들어와 읍내 상가유리창을깨고 부상자6명을 영광읍내 광주위원과 인제위원에 입원시켰다.
광주시 낮l2시쯤 광주시내와 도청·도경을 완전점거하고 금남로에 집결, 자체 수습대책을 논의했다. 이날하오부터 학생들은「마이크」를 통해 시민·학생에게 자제를 호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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