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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농촌은 모자라고 도시선 남아돌아|농번기 맞은 전국의 인력 사정을 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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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농촌에 모내기·보리베기 철이 다시 돌아왔다. 5월말부터 6월 한 달은 농민들에겐 연중 가장 고달픈 계절. 게다가 해마다 겪어야하는 일손부족은 올 따라 더욱 심해져 농민들은 걱정이 많다. 일꾼들의 품삯도 지난해보다 20∼1백%까지 올라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로 가중된 영농비 부담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나마 비싼 삯을 주어도 일손이 없어서 못쓰는 형편이다. 그런가하면 도시에서는 불경기 여파로 크게 늘어난 실업자와 무직청소년등 유휴노동력이 거리를 배회하고있어 대조를 이룬다. 농촌과 도시의 인력사정을 알아본다.

<모자라는 일손>
올 모내기·보리베기철에 전국에서 부족한 일손 수는 연4백만명. 전체투입 연인원4천3백만의 약11%다. 그러나 지역에 마라 부족율은 이보다 훨씬 크다.
경북월성군의 경우 모내기철에 연인원 41만명이 필요하나 동원가능한 인력은 29만명 뿐으로 12만명이나 모자란다.
전북 군산시소정동삼수마을의 경우 농가 21가구가 15만평의 논농사를 짓고있는데 6월 한달은 매일 연인원 7백50명이 필요하나 주민들로는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할 형편.
30가구가 8만4천평 논을 가는 옥구군개정면정수마을도 노동력은 부녀자만 3백여명으로 모내기 소요인원 하루 4백14명에 턱없이 모자란다.
완주군운주면경천리 오면마을도 논일을 부녀자와 경운기 2대에 의존하고 있다. 계속된 이농으로 노동력이 있는 집은 40여가구 뿐이었는데 그나마 전주등지의 도시정비사업에 빼앗겨 모내기 일손은 거의 없다.
경북안동군남선면신석동 김태동씨(55)의 경우는 4천평의 논에 모내기를 하는데 인부30명이 필요하나 아직 한명도 구하지 못했다. 경남도는 6월 한 달에 필요한 일손이 모두 1천6백29만명이나 공급 가능량은 1천5백38만명으로 71만명이 부족하다. 전남도는 30만명으로 이보다 조금 나은 형편.
이같이 절대일손이 부족하고 그나마 부녀자들에 의존하는 것은 오랫동안 계속된 이농현상 때문. 충북중원군 같은 곳은 70년들어 매년 평균 2백여 가구가 도시로 나가버렸다. 경기시흥군수암면조남3리에는 고교를 졸업한 청년들은 모조리 고향을 떠나 지금은 20대가 하나도 없다. 도시로부터의 유입인구도 지난 5∼6년 동안 한명도 없었다.

<껑충뛴 품삯>
이에 따라 농번기면 농촌을 찾아드는 일꾼들의 품삯도 크게 올랐다. 지난해엔 하루3천∼5천원씩 하던 것이 올해엔 6천∼8천원으로 오르고 있다. 세때 식사와 2번의 새참, 술대접 2번, 거북선담배 한 갑은 별도다.
남녀구별이 없어진 곳도 많다. 전북의 경우 지난해엔 남자 3천원·여자 2천원이었으나 올해엔 모두 5천원 선으로 올랐다. 그래도 일손을 구할 수 없어 농민들은 도시로 나가 선금을 주고 「예약」을 하는 형편. 충남홍성군금마면송강리 이기용씨(62)등 농민들은 17일부터 시작된 모내기를 위해 선금을 주고 일꾼을 계약했다며 가장 바쁜 25∼31일 사이엔 선금도 안통해 「프리미엄」을 줘야한다고 말했다.
경북안동등 일부지방에서는 논2백평당 남자는1만원, 여자는 7천원씩 주고 아예 「도급」을 주는 방식도 성행하고 있다.
농촌의 「고임금」(?)을 노려 도시의 영세부녀자들이 「팀」을 짜 근교농촌의 농사일올 해주기도 한다. 시흥군에는 인접한 서울·인천·수원·안양의 영세부녀자들이 20∼30명씩 조를 짜 지원「신청」을 받고있다.
여주군여주읍점봉리의 생산업체 서진주식회사의 경우는 특이한 예. 매년 농사철엔 1천7백 종업원중 3백여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철새처럼 농촌으로 간다. 공장일당 1천4백∼1천6백원보다 3배 이상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효과에 그치는 일손 돕기>
고질적 일손부족을 메우기 위해 당국은 매년 학생·공무원·직장인·군인 등을 동원, 일손돕기에 나서지만 배정에 균형을 잃는 경우가 많고 전시효과에 치중해 불만이 많다. 경기시흥군수암면의 이극내씨(46)는 『당국이 눈에 잘 띄는 국도연변만 일손지원을 한다』고 말했다.
일손 구하기에 지친 농민들은 소출의 30%만 받는 조건으로 아예 타인대리경작을 주어버리기도 하나 그것도 희망자가 거의 없다.

<고유가에 발 묶인 농기계>
영농비 절감과 일손문제 해결을 위해 협동농사대를 조직하는 마을도 많으나 절대인원부족으로 한계가 있는 실정. 충북중원군주덕면기중리는 8만여평 농사를 위해 40명으로 협동농사대를 조직했으나 손이 달려 도시인력 20여명을 공동부담으로 흡수, 모내기를 하고있다.
당국이 인력난 해결을 위해 집중 공급해온 이앙기등 영농기계도 별 도움을 못 준다. 절대수도 부족하지만 기계를 쓸 수 있는 논도 적다. 홍성군의 경우 56대의 이앙기로 5백60정보를 「커버」하나 전체비율은 6%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1백80대가 있는 위산군도 총1만2천8백70정보중 9백28정보만이 이앙기로 모내기를 할 수 있다. 그나마 유류값이 올라 충분한 활용도 못하는 형편이다.

<남아도는 인력>
농촌지역의 심각한 일손부족과는 대조적으로 도시에서는 요즘 유휴노동력이 부쩍 늘고있다. 불경기로 인한 기업들의 휴·폐업, 인원감축 등으로 실업자가 는데다 이들을 흡수할 건축·토목공사들도 전반적으로 부진하기 때문.
부산시의 경우 올 들어 동명목재등 40여개 기업이 휴업을, 60여개가 폐업을 했다. 이로 인한 실업자수는 동명의 3천7백여명을 비롯, 대기업에서만도 5천명을 훨씬 넘었다.
대한조선공사도 긴축정책으로 8백여명을 감원했다.
노동청 동래지방사무소를 찾는 구직자는 요즘 매일 20명이 넘는다. 충무동 제39직업안내소에도 하루 10여명이 몰려와 일할 공장을 찾고있으나 10%밖에 취업알선을 못하고 있다.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에도 지난해보다 2배가 넘는 하루50명 이상이 구직의뢰를 해오고 있다. 시내4개 직업소개소에도 하루 1백20명 꼴로 실업자들이 찾아든다는 것.
대전시인력은행에는 올 들어 현재까지 1천8백여명이 구직등록했으나 업체의 구인의뢰는 60명뿐이었다.
건축공사건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이상 줄었다.
대구시 취로사업장에도 지난해에는 1개 사업장에 펑균 50∼60명씩 나오던 영세민들이 올해엔 배로는 1백20명씩 몰려 하루품삯 2천5백원의 취로를 다투어 희망하고 있다.
안동시에서는 올들어 건축허가 건수가 지난해보다 42%나 줄어 5월초 현재 1백61건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작년엔 최고 7천원까지 올랐던 공사장노임이 5천원 수준으로 내렸는데도 희망자가 남아돈다.
문제는 이같이 남아드는 도시인력이 물 흐르듯 일손부족 농촌으로 흘러들지 않는데 있다.
도시 번화가의 다방 등에는 대낮부터 실업자와 무직청소년들이 득실거리지만 아무도 농촌에서 일거리를 찾을 생각은 않는다. 농사일이 공장일보다 거칠고 힘든데다, 노임이 올랐다곤 하지만 도시공사판보다는 아직 떨어지기 때문. 젊은 층일수록 농사일에의 염증은 더욱 크다.
19일 성남시다방에서 빈둥거리던 이모군 (20) 은『하루 1천3백40원씩 받고 공장에 나가다 지난3월 실직, 공사장에서 날품을 판다』며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농사일이 싫어 시내를 배회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당국이 이들 유·휴 노동력의 농번기 농촌유입을 조직적으로 계몽·알선해 주기를 바라고 있으나 아직은 아무런 대책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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