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On Sunday

혁신과 양치기 소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혁신(革新)은 묵은 풍속이나 관습·조직 등을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갓 벗겨낸 가죽인 피(皮)를 무두질해 새 것처럼 만든 가죽이 혁(革)이다. 그러니 피를 혁으로 탈바꿈하듯 혁신은 기존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은 키워 180도 면모를 일신함을 일컫는다 하겠다.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란 영어를 떠올리면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기술혁신이나 혁신기업 등 특히 경제 분야에서 첨단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온 게 혁신이다.

새롭다는 것은 늘 긍정적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혁명(革命)이나 개혁(改革)과는 또 다른 어감이다. 혁명은 모든 걸 뒤집는 속성상 급진적 변화를 꺼리는 이들에겐 부담스러운 단어다. 반대로 개혁은 지지부진하다는 이미지를 수반한다. 여기엔 역대 정부가 내세웠던 개혁이 매번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전례도 한몫한다. 이에 비해 혁신은 혁명보다는 안정감 있고 개혁보다는 참신한 이미지를 내포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역사가 혁명의 시대에서 개혁의 시대로, 21세기 들어 혁신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학계의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혁신을 국정 키워드로 본격 내세운 건 노무현 정부 때였다. 참여혁신수석을 신설하고 혁신도시를 추진했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혁신학교를 세웠다. 과거의 얘기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혁신을 앞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국가개조라는 구호도 국가혁신으로 바꿔놨다. 야당의 제언을 곧바로 수용하면서다. 새누리당 7·14 전당대회 후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혁신을 앞세우며 한 표를 호소했다. 7·30 재·보선을 앞두고는 ‘혁신작렬’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바야흐로 혁신 만능의 시대가 도래한 모습이다.

새누리당 혁신 드라이브의 절정은 이준석 위원장을 앞세워 야심차게 발족한 혁신위원회다. 이름도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줄여서 ‘새바위’로 정했다. 인기 예능프로인 ‘세바퀴’를 패러디했는데, 선거 때마다 무슨 쇼냐는 비판 속에서도 잇따라 혁신안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재·보선을 치른 뒤 새바위가 흐지부지 사라져 버린다면 “선거 때만 되면 혁신을 외치더니 늘 그랬듯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준석 위원장도 이대로 혁신위를 마감하면 자기 이미지만 챙기고 책임은 지지 않는 기존 정치인의 구태를 답습한다는 평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또 다시 혁신을 외칠 때 누가 그 진정성을 믿어주겠는가. 양치기 소년이 따로 없다는 비아냥만 받기 십상일 게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도 있지 않은가. 혁신이란 단어마저 오염되면 국민은 또 어떤 단어를 기대해야 한단 말인가. 깜짝쇼도 삼세번은 힘들다. 승패를 떠나 재·보선 이후 이준석과 새누리당 새 지도부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박신홍 정치부문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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