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믿고 살아온 장남 목조른 모정에 법의 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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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편없이 키워온 아들이 타락해가는 것을 보다못해 목졸라 숨지게한 어머니가「법의 온정」으로 풀려났다.
서울형사지법 합의12부(재만장 이재화부장판사)는 13일 비속살인죄로 구속된 이모피고인(50·여·서울공덕동) 에게 형사사상 드물게 집행유예를 선고, 새삶을 되찾게 해줬다.
『26년간을 믿고 살아온 아들이 전과자가되고 끝내는 가족까지 때리는 패륜아로 되자 이피고인온 실의와 배신감으로 사랑하던 아들의 목을 조르는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살인을 했지만 이세상 어느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하고 가슴아파하는 피고인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 새 삶을 찾게하는 것입니다.』징역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재판부의 판결 이유다.
이피고인은 30년전 유모씨와 결혼, 2남2녀를 두고 유복한 생활을 했다.
맏아들이 11세되던 1965년 남편이 사업에 실패, 집안이 기울자 집을 나간채 행방불명됐다.
어린자식들을 위해 이씨는 단칸셋방을 떠돌며 가정부·떡장수·배추장수등 온갖고생을 무릅썼다.
이씨에겐 맏아들이 가장(가장)과 같았고 모든 보람이었다.
그러나 큰아들 유군은 이 기대를 저버린채 고교2학년때부터 폭력행위등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유군은 끝내 전과 3범이 됐다.
이때문에 맏딸은 7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는 그래도『아들이 철들면 집안을 돌보려니…』하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해 12월4일밤 아들은 여전히 술에 취한채 동네사람들과 싸움을 했고 이를 말리는 식구들을 때리며 집안 가재도구를 마구 부숴 난장판을 만들었다.
제풀에 지쳐 곯아 떨어진 아들을 보는 순간 이피고인은 실망감과 끓어오르는 배신감에 26년간 사랑해오던 아들의 목을「머플러」로 죄었다.
이씨는 곧장 파출소로 달려가 자수했으나 경찰관들조차 그처럼 착한 이씨가 그런 짓을 했을것으로 곧이 듣지 않았다.
이웃 1백여명도 다투어 이씨의 관대한 처벌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재판부에 내 한때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이씨의 남은 두자식은『다시는 어머니 가슴에 아픔을 안겨드리지말자』며 눈물을 홀렸다. <김종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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