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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독극물 안 나왔지만 … " 자연사 결론도 못 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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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병언의 시신임은 틀림없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유병언(73) 청해진해운 회장 시신에 대한 2차 정밀부검을 마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내놓은 최종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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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25일 브리핑을 시작하며 “감정 결과로 국민적 의혹 해소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 회복, 사회통합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핵심적인 의문들은 풀지 못했다.

 국과수는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 회장이 틀림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DNA 검사와 치아·손가락 같은 신체적 특성을 근거로 댔다. 순천경찰서로부터 의뢰받은 대퇴부 뼈와 치아를 정밀분석한 결과 순천 송치재 별장과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서 확보된 유 회장의 DNA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시신의 왼손 X선도 공개됐는데 왼쪽 검지 끝마디가 잘린 흔적이 뚜렷했고, 약지 끝부분은 휘어 있었다. 유 회장은 20대에 사고를 당해 손가락 일부가 잘려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유족이 제출한 치아 기록과 시신의 금니 위치도 정확히 일치했다. 국과수는 시신과 유 회장의 형인 병일(75·구속 기소)씨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같은 부모를 둔 형제라는 결론도 내렸다. 서 원장은 “모계 유전자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결과가 나온 만큼 시신과 병일씨가 이복형제일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원 확인이 늦어진 탓에 정확한 사망시점은 밝혀내지 못했다. 서 원장은 “구더기와 번데기가 함께 있는 현장 사진만 보면 죽은 지 10~15일 된 것 같지만 (현장을 가지 못해) 정확한 추정은 어렵다”고 말했다. 사인에 대해서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우선 간·폐·근육조직을 떼어내 일반 독극물과 마약류, 케톤체류(당뇨 지표) 등과의 반응 검사를 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백승경 국과수 독성화학과장은 “이 데이터로는 유 회장이 사망 당시 음주나 약물중독 상태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수거된 소주병·머스터드통 등 8개의 증거물에서도 독극물이나 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골절·멍·상처 같은 외부 충격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 또 목 부위 근육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질식사 여부도 확인하지 못했다. 목과 몸통이 분리된 채 발견된 것에 대해 이한영 법의학센터장은 “흉기가 작용한 증거는 없지만 뼈만 남은 상태에선 목에 강한 힘이 작용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현장 사진상 체온이 내려가 죽을 때 모습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과수 발표 내용을 수긍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건국대 박의우(법의학) 교수는 “부패가 심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낸 결과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부패한 시신에서도 의미 있는 소견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번 유병언씨 시신에서는 그런 것조차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국과수 부검으로도 사인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음에 따라 검경의 초동 조사 부실에 대한 비판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서 원장은 “시신을 발견하고 부검했을 때 수사관들이 보다 철저하게 간이나 근육을 채취했으면 더 빨리 감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승기·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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