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상 측면서 독립운동사 연구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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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의 현대사를 독립운동사의 정통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는 연구경향이 관계학자들 사이에 두드러지며 그 연구성과가 잇달아 출판되고있어 주목을 모은다. 독립운동사에 대한 이 같은 최근의 연구추세는 종래 감격과 숭배로만 일관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정치·사회·경제·사상의 넓은 시각에서 종래의 독립운동사를 반성하는 한편 독립무장전쟁노선과 독립운동노선의 두 갈래로 나눠 가치판단을 부여하고 있다는데 특징을 두고있다.
그 가장 두드러진 연구가 최근에 나온 박성방 교수 (숭의여전)의 『독립운동사연구』 (창작과 비평사간) 와 박영석 교수(건국대)의 『만보산 사건 연구』 (아세아문화사간) 등 「일제 하 재만 한인」에 대한 일련의 연구다. 또 최근의 연구성과를 모아 대중화하는 작업의 하나로 민족문화협회에서 펴낸 민족운동총서도 이 같은 연구경향을 띤 것으로 주목할만하다. 이 총서 중 1차로 간행된 책은 모두 3권. 각기 「의병들의 항쟁」편을 조동걸 교수 (안동대) 가, 「3·1운동」 편을 김진봉 교수(충북대)가, 「독립군의 전투」 편을 신재홍 교수(국사편찬위)가 쓰고있다.
박성수 교수는 현재의 분단상태와 연결 지어 독립운동사 연구를 하고있다는데서 문제의식을 뚜렷이 보이고있는데 이 같은 「분열」의 뿌리를 이미 3·1운동이후의 노선대립에서 찾고있다.
50년 간 독립운동의 역사는 크게 양대 산맥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그 하나는 의병-독립군-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독립전쟁노선의 맥이고, 다른 하나의 맥은 애국계몽-33인- 상해임시정부로 이어지는 독립운동 노선. 앞의 노선은 일제의 군사지배를 종식시키고 완전독립을 쟁취하는 유일한 전략으로 독립전쟁의 수행을 확신하고 있는데 반해 뒤의 것은 외교· 언론· 교육 등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독립전쟁노선의 맥을 제1차 의병전쟁 (1896년)-제2차 의병전쟁 (1905∼10년) -3·1운동 (1919년)-l광복군과 임시정부의 4장으로 나누어 서술하면서 『만일 독립전쟁노선이 독립운동사의 주류로 되었더라면 민족해방의 자주성은 기대가 능했으리라』고 우리현대사의 실패를 독립운동노선의 우세에서 찾고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박영석 교수는 최근 논문 (한국사연구 24집)에서 항일의병의 후예인 한가족이 만주로 이주한 후 중국과 일본세력의 각축 속에서 생존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한국현대사(1910년∼48년)를 조감하고있어 새로운 연구 경향을 보인다. 이 가족은 경북울진군 평해면 직산리 출신의 이종대씨(지난해사망)일가. 이씨의 조부 희영은 평민의 병장 신돌석과 함께 의병전쟁에 참가한 탓으로 1911년 만주로 이주했다.
이후 희영-규일-종대의 3대가 부닥치는 갖가지 경험을 종대씨의 구술을 통해 재구성한 이 논문은 역사의 정통성이 이들 재만 한인들의 생활 속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관심을 끈다.
특히 이들이 일본과 중국의 박해 속에서도 독립군으로 싸우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음을 논농사(답 농업)기술을 갖고있었기 때문으로 밝힌 그는 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이들이 종래의 무장항일노선을 속으로 감추는 한편 중국정부의 협력을 얻어 광복군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풀이하고 있어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같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주력하는 강만길 교수(고려대)는 최근의 이 같은 연구경향에 호의를 표시하면서 『제국주의의 침략아래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무장투쟁 이외의 어떠한 방법도 유효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임정이 초기의 외교 독립론을 스스로 깨고 나중에 광복군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은 이점에서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강교수도 박영석 교수와 함께 남 만주에 서로 군정서를 조직, 무장항일투쟁을 벌인 석주 이상룡 선생에 대한 연구를 할 계획을 짜고 있다. 그에 대한 자료로는 고대도서관에 소장돼있는 『석주유고』가 있다. 한편 연세대 교환교수로 일시 귀국한 서대숙 교수 (미 「하와이」대· 정치사)가 연세대국학연구원주최로 오는 23일 하오 3시 연세대에서 발표예정인 『동북항일 연합군, 1933년∼41년』에 대한 연구발표도 중·일 전쟁 때 중국 군과 함께 항일공동전선을 편 한국독립군의 활약상과 그 평가라는 점에서 같은 연구경향을 떠는 것으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방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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