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100일, 할 일은 안 하고 소리만 요란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세월호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우리 공동체의 모습은 여전히 답답하다. 진상규명과 보상을 다룰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여야는 기싸움을 벌였다. 유가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집회를 갖고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의 승객과 함께 침몰했다. 23일까지 294명의 시신을 찾아냈지만 10명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대(大)참사 직후, 사회 각계각층은 세월호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 100일간 우리가 뭘 했나 돌아보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개조 수준”으로 공직사회의 적폐를 도려내겠다고 선언했다. 정홍원 국무총리 역시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해 민·관 합동 추진체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개조의 최우선 과제로 관료·민간의 유착, 이른바 ‘관피아’(관료 마피아)의 척결을 꼽았다. 정부는 관료들의 취업제한 대상 기관을 확대하고 기간을 연장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넘겼다. 국가안전처 신설을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공직사회의 부정청탁 금지 등을 위한 ‘김영란법’도 국회로 갔다. 그런데 이들 법안 중 단 하나도 여의도 정쟁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회 전반의 안전불감증 역시 나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2주 뒤에 터진 서울 상왕십리 전철 추돌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장 난 신호체계를 방치해 두고 운행하다가 200여 명의 승객이 부상을 입는 참사를 초래했다. 5월 28일 전남 장성 요양병원에서 일어난 방화사건 역시 원시적인 인재였다. 비상구를 막아놓고 소화기함을 잠가놓는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도 지키지 않았다. 엊그제 강원도 태백에서 발생한 관광열차 충돌사고 역시 신호를 보지 않고 운행하다 생긴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해상안전 대책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출항 전 선박안전감독 강화, 운항관리자의 직무태만 처벌 등은 본격적으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참사 100일을 맞아 한 조사업체가 국민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세월호 이후 정부에 더 불신을 갖게 됐다고 답했다. 가뜩이나 빈약한 우리 사회의 신뢰자본이 더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정부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해경·군의 구조활동은 엉망이었고 청와대·관계부처는 허둥지둥했으며 검·경은 죽은 유병언을 지척에 두고 40여 일간 사상 최대의 수색작전을 펴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땅에 떨어진 국가신뢰도를 높이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유·무형의 갈등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참사다. 그래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원인을 찾아내 이를 수술하고, 교훈을 사회 전반에 전파해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 대한민국이 좀 더 성숙한 안전사회로 거듭나야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