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준 게임 캐스터, "부모들, 학원은 줄줄 꿰면서 왜 게임엔 무지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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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 일 용산e스포츠스타디움에서 열린 ‘HOT6 롤 챔피언스 서머 2014’ 8강전 경기 현장.

게임 캐스터. 야구·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캐스터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게임을 중계하는 직업이다. 많은 기성세대에게는 아직 낯선 직업일 것이다. 그러나 주로 10~20대인 게임 팬에겐 게임 캐스터가 이미 유명 직업이다. 특히 전용준(42)·정소림(41) 캐스터는 게임 좀 한다 하는 청소년 사이엔 지명도가 높은 유명인사다.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인 전 캐스터는 ‘스타크래프트’를 중계할 때 특유의 속사포 언어구사로 인기를 얻었다. 팬들이 그의 중계를 편집해 랩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하기도 했다. 2004년 스타크래프트 결승을 보기 위해 10만 명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 모인 일명 ‘광안리 대첩’ 때도 그가 있었다. 정 캐스터는 보기 드문 여성 게임 캐스터다. 캐스터 데뷔 당시 이미 한 아들의 엄마였다. 다른 엄마는 아들이 해도 뜯어말린다는 게임을 업으로 삼은 엄마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전용준(42)
1972년 서울 출생
1991년 서울 구정고 졸
1995년 서울대 인류학과 졸
1998년 iTV 경인방송 아나운서 입사
2000년~현재 프리랜서 게임 캐스터로 활동
 

사는 곳: 용산구 이촌동
근무하는 곳: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
운동하는 곳: 집(자전거 타기, 아령 들기)
한강변 걷기
장보는 곳: 용산 이마트. 노량진 수산시장. 온라인
으로는 icoop생협·옥션·G마켓·11번가 등 이용
자주 가는 식당: 서소문 고려삼계탕·진주회관(콩
국수)·강서면옥, 잠원동 유명국 양평 해장국
 
가족
아내(42)

전용준 캐스터가 좋아하는 챔피언, 브라움. 방패로 상대 공격을 막거나 같은 팀을 치료하는 등 뒤에서 팀원을 돕는 ‘서포트’ 역할 챔피언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방어력 높은 ‘브라움’을 제일 좋아한다.

-게임은 주로 학생들이 한다. 부모 대부분 자녀가 게임하길 원치 않을 텐데.

“음. 게임은 아이들에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좋다 나쁘다 판단에 앞서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나쁘다고만 하지 말고 부모가 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부모들은 입시 문제에 관해선 자녀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 어느 학원이 좋은지 어떤 강사가 유명한지, 또 애들 건강에 뭐가 좋은지도 줄줄이 꿴다. 다 아이에게 필요하니 관심을 갖고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유독 게임에는 그렇게 인색한가.”

-부모더러 게임을 배우라는 말인가.

“많이 하란 말이 아니다. 어느 정도만 해갖고선 절대 잘할 수 없다. 잘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 게임을 정말 못하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게임이 갖고 있는 이런저런 문제를 부모와 자녀가 함께 풀어갈 수 있는지 최소한 판단할 수 있다는 거다. 요즘 롤(LOL·League of Legends) 게임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면 일단 게임 아이디(ID)부터 한번 만들어 봐라. 더도 말고 딱 5시간만 투자해보면 어떨까.”

-쉽지 않은 이야기다. 애들 하는 것도 말릴 판에 관심도 없는 게임을 하라니.

“재미없고 힘들고 짜증나고 귀찮을 거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보인 끝에 게임에 대해 판단하고 자녀와 대화하면 아이도 수긍할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무조건 막으려고 하면 아이들은 틀림없이 속으로 ‘엄마가 언제 게임 한번 제대로 해보고 이런 말 하나’라며 반발할 거다. 애들이 엄마 말 안 듣는 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꼭 해봐야 아나.

“게임이 왜 나쁜 지를 인터넷 검색이나 다른 학부모 의견만 듣고 얘기하는 건 피해야 한다. 어른 눈에야 게임 할 시간에 공부하는 게 더 좋을 수밖에. 애들 입장도 똑같다. 게임 좋아하는데 부모가 무턱대고 게임 나쁘다고 백마디 해봤자 그 아이는 ‘게임하는 게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게임 캐스터라고 게임에 너무 관대한 것 같다. 그 직업을 갖기 전에도 이런 생각이었나.

“먹고 사는 것도 바쁜 데 무슨 게임. 이게 27살 때 내 생각이다.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워낙 유행이라 주변에서 그렇게 많이들 하고 있었는데도 난 ‘게임을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라고만 생각했다. 게임이라고 해봐야 오락실 가서 500원 넣고 한 판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쩌다 게임 캐스터를 하게 됐나.

“회사 윗사람의 고정관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1998년 iTV경인방송(현 OBS)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방송국에서 게임 중계 방송을 하기로 하고 프로그램 진행자를 찾는데 윗사람들이 막연히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 아나운서실에서 제일 어린애가 누구야, 여자는 게임 안 할 테니 남자 중에 제일 어린 애가 누구야, 전용준이네, 그럼 네가 해. ‘이렇게 된 거다. 한 달 게임 배우고 게임 중계 방송에 투입됐다.”

-입사 2년 만에 퇴사하고 본격적인 게임의 세계로 들어섰다.

“99년 11월 게임 중계를 하다 보니 세상 바뀌는 게 보이더라. 작은 PC방 하나 하던 사장님이 100호점 내고, 작은 게임회사가 갑자기 상장하던 때다. 산업이 급변하고 요동쳤다. 게임산업이 커지면 게임방송도 할 일이 많아질 것 같았다. 이미 게임 중계 경험이 있고, 게다가 게임 중계라는 분야는 다른 아나운서가 침범 못하는 분야였다. 선점할 수 있겠다 싶었다. 때마침 게임방송 ‘온게임넷’이 만들어지면서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특이한 중계 스타일로 인기가 많았다.

“말을 정말 빨리 하고 점점 톤이 높아지는 게 내 개성이다. 내가 조직 안에 있고 위로 선배가 있었다면 ‘너 기본 장·단음은 고려 했냐, 말의 시작과 끝 호응은 고려했냐, 말에 영어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도 되냐, 톤이 그렇게 높으면 사람들이 놀라지 않겠냐, 방송하는 사람이 지금 싸움하는 거냐’ 뭐 이런 식의 꾸중을 많이 들었을 거다. 그러나 이 세계엔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내가 방향을 잘못 잡은 거였으면 단명했겠지만 PD가 큰 문제가 없다니 내 스타일로 그냥 갔다.”

-목에 무리가 갈텐데.

“병을 안고 산다. 가장 심했던 건 2002년. 급성 편도선염을 앓아서 약 먹고 쉬어야 하는데 중계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내가 소리를 좀 지르나. 목이 너무 아파 종합병원에 갔다. 의사가 쉬며 정기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중계를 말렸지만 방송을 꼭 해야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발라준 약이 있다. 암 환자가 치료 과정 중 피부가 괴사되면 통증을 억누르기 위해 쓰는 최후의 약이었다. 열흘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더 아파졌다.”

-어떻게 됐나.

“병원에 가니 편도선이 썩고 있다고 하더라. 새카맣게. 괴사 부분을 잘라내느냐 마느냐까지 나왔다.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넘겼다.”

-그 후 목 관리는 어떻게 하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당시 바보 같았다. 걷기나 자전거 타기 전에도 워밍업을 하지 않나. 아나운서 할 때만 해도 방송 전 발성연습하고 목을 풀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에이 할 줄 아는데 뭘, 내가 방송 하루이틀 하나’.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한 거다. 한 5년 만에 다시 발성연습을 했다. 그 이후엔 목이 쉬어도 빨리 회복되고 심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더라. 또 목에 좋다는 죽염을 꾸준히 먹고 목에 무리가 갈까봐 노래방도 가지 않는다.”

-벌써 게임 중계 15년이다.

“야구·축구 같은 전통 스포츠는 종목이 사라질 리가 없지 않나. 그러나 e스포츠는 인기에 따라 아예 종목이 없어질 수도 있다. ‘스타크래프트’가 주종목이던 해설자들은 지금 방송출연도 쉽지 않다. 다행히 난 롤 중계를 하고 있지만 캐스터와 해설자, 그리고 게임단 감독 등 모두 자신이 하는 게임 종목 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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