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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칼이 날아와도 다 받아 주겠다" 공화당사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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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 의원 집 쳐들어가자>
○…공화당 청년당원들은 25일 상오 9시부터 40분 동안 남산중앙당사 강당에서 단합대회를 열고 이후락 의원을 「반당 행위자」로 규탄했다.
이른 아침부터 당사에 몰려온 청년당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 의원이 반성은커녕 당 파괴 행위를 자행한 것은 3천5백만의 이름으로 응징하고 지탄해야 한다』고 주장.
한 청년당원이『지금 당장 이후락 집으로 행진해 쳐들어가자』고 즉석 제의하자 3백여 청년당원들은『옳소, 나갑시다』며 일어서려다 간부들의 만류로 자리에 앉은 채 규탄대회를 계속했다. 한 당원이『김종필 총재의 자리에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줄 그날까지 힘차게 전진하자』고 말하자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고 대회는「영광의 소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문장 낭독하듯 속사포>
○…24일 상오 공화당의 정풍파 의원들이 자제결의를 김종필 총재에게 전달한지 불과 몇 시간 만인 하오 정풍 대상의 이후락 의원이「탈당거부」와 당내혼란의 책임을 김 총재에게 돌리는「폭탄선언」을 함으로써 중앙당사는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한 분위기로 변했다.
이 의원은 하오 2시쯤 비서관 이영재씨를 통해 출입 기자실로 전화를 걸어 기자 회견을 자청했다.
기자 회견 소문이 퍼지자『이 의원이 왜, 무슨 얘기를 하려고 기자들과 만난다는 거냐』고 일부 당직자와 사무국요원들로부터 문의가 여기저기서 나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의원은 약속시간인 3시30분 정각에 이 비서관·「보디·가드」2명과 함께 총재실을 거치지 않고 기자실에 곧바로 들어서『그 동안 여러 가지로 내가 물의에 올라 여러분을 뵙기가 부끄럽다』고 말문을 연 뒤 자신의 입장과 소신을 문장을 읽듯 속사포로 쏟아 놓았다.
기자실엔 출입기자와「카메라맨」외에 기관원·의원비서관·사무국요원 등 1백여명이 귀를 기울이며 이 의원의 회견내용을 경청했고 최영철 대변인·이태섭 총재비서실장도 시종 지켜봤다.
20분간 계속된 회견에서 이 의원은 단 한번『공화당의 총재이신 김종필씨가…』라고 총재라는 호칭을 썼을 뿐 내내 「김종필씨」라고 불렀다.
표정은 약간 상기됐으나 특유의 말더듬 없이 미리 외어온 듯이 회견내용을 원고 없이 발표했다.
정확히 17분 동안 이 의원은 김 총재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과 자신의 거취·축재설에 언급하곤 일어서려다『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구 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보도진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체 자리에 앉아 질문에 응했다.
3분 동안 답변에 응한 이 의원은 계속되는 질문을 거절하고 벌떡 일어나「보디·가드」에 싸여『총재께서 좀 만나자고 하신다』는 이태섭 비서실장의 전갈을 듣고도 모른 체 아무 대꾸 없이 총재실을 쳐다보지도 않고 현관 앞에 대기한「그라나다」승용차로 황급히 당사를 떠났다.

<당5역, 신경 곤두세워>
○…김종필 총재는 이 의원이 회견하는 동안 총재실에서 주한「캐나다」대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었으나 당 5역들은 이 의원의 회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기했었다.
이 의원의 기자회견 정보를 입수한 한 당직자는 2시부터 3시20분 사이에 이 의원과의 통화를 세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기자회견 후 간신히 이 의원 비서관과만 통화했다.
하오 4시쯤 기자회견 때는 아무말 않고 보고만 있던 사무국요원들이『과거 박 대통령 밑에서 영화 속에 살던 사람이 당을 이처럼 망치려 들 수 있느냐』고 뒤늦게 흥분.
하오 4시20분쯤부터 강당에 자발적으로 모인 1백20여 당원(사무국요원80·재경중앙위원4O명)들은 고함과 열띤 박수를 보내며 2시간동안 이 의원이 △당의 위계질서 파괴 △당의위신추락 △당의 품위손상의 장본인이라고 규탄했고 임호 의원도 똑같은 반당분자라고 성토했다.
이즈음 김 총재는 이 의원의 발언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내용을 검토했고 당고문회의가 긴급소집 됐다.
이즈음 대변인실 흑판엔 3월25일 상오9시 반당분자 이후락·임호 강당에서 규탄대회 소집·청년분과위원회주최라는 알림이 쓰여져 있었다.
최영철 대변인은 처음으로『이 의원의 회견은 의외의 내용이었다며『과거당의 단결을 호소했고 박 대통령을 오래 모셨던 사람이라 자중할 줄 알았는데 신경질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여 실망했다』고 논평.
최대변인은 『종로에서 뺨맞고 동대문에서 분풀이한다』고 빗대고 『국민들로부터의 지탄의 화살을 남에게 떠넘기려는「페인트」작전』이라며『이 의원은「10월」이후 의총에서 두 번 발언했는데 첫 발언에서는 김 총재의 선출경위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나중에는 압도적 분위기에 눌려 JP를 만장일치로 총재로 모시고 단결하자며 박수까지 선도했던 사람』이라고 상기시켰다.

<고간들 아무 할말없다>
○…김 총재와 정일권 이효상 백남억(박준규 고문은 IPU회의 참석으로 불참) 고문이 참석한 고문회의는 정 고문이『구체적 얘기는 없었다』면서 먼저 퇴장했고 10분쯤 후에 이·백 고문이 밖으로 나왔는데 이 고문은『나 자신 무슨 말을 해야할지 결정을 못했다』고 말했고, 백 고문은『아무 할 얘기가 없다. 한솔(이 고문의 아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고문회의를 마치고 당직자회의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김 총재는 총재실 옆 보좌역실에서 혼자 명상을 하다가 기자들을 잠시 만나『좋은 거리 생겼군』이라며 농담을 걸고 태연과 여유를 보였다.
소감을 묻자 김 총재는『세상일에 너무 팔딱하면 안된다. 지난 18년간 이런 일은 연속이었다. 허심탄회한 얘기는 먼훗날 해줄께』라고 직접적인 논평을 회피했다.
그는『모시던 사람에게 총을 마구 쏘는 세상이니까 별일이 다 있을 것이요. 앞으로 더 큰 바람이 있을지 몰라요. 무슨 칼이 날아와도 나는 다 받아주겠다 』고 했다.
이 의원과 원한관계라도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니까 거기 가서 물어보라. 사람이라는 게 극도로 흥분하면 자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고『최근 정풍 소요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 것은 이런 사태를 예견했기 때문이냐』고 묻자 『내가 기자라면 일단 사실 보도만 하고 전후좌우를 다 본 다음 쓰겠다. 그렇지 않고 이것저것 주워 모아쓰면 진상파악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무국 요원들 제명 건의>
○…이 의원이 기자회견을 한 직후 사무국 요원 및 재경중앙위원 1백20여명도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이 의원의 징계요구를 결의했다.
사무국요원회의는 이 의원에 대한 제명을 건의하고 김 총재를 중심으로 일치 단결하여 전진해 나갈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앞으로의 대책협의를 위해 부장급 인사로 10인 대책위를 구성키로 했다.
최영철 대변인은 당직자회의가 끝난 후『이 의원의 언동은 정풍파 의원들로부터 매도된 데 대한 일종의 화풀이로 자기에게 쏠린 화살을 총재에게 돌리는 용납 못할 작풍』이라고 비난했다.

<모두가 울분 한마디씩>
○…당직자들이 회의를 마치고 총재실로 와 침울한 표정을 짓자 김 총재는『무엇이 그리 심각한가. 우리는 모든 것을 까놓고 심판 받자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미동도 할 필요 없다』고 위로했다.
김 총재는『저녁이나 같이하자』는 간부들의 권유에 따라 P「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밤10시쯤 귀가했다.
김 총재는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기자들을 만나자 취기 어린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너털웃음을 웃었다.
자리를 함께 한 이병희·길전식 부의장, 육인수 중앙위의장, 김용호 총무, 김유탁 훈련원장, 장영순 보좌역, 장경순·김택수 당무위원, 최영철 대변인, 이태섭 비서실장. 김우경 사무차장 등도 모두 취기를 풍기며『세상에 허무를 느낀다. 폭풍아 불어라. 그래도 우리는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으리라』『이후락이가 JP를 배신자라고 하는 세상이 다되었어』『공화당도 야당 할 각오로 이 의원의 배후와 정면대결 하겠다』는 등 울분과 감정의 한마디씩을 토했다.
그러면서 한 의원은『박준규(해외) 구태회 민관식 현오봉 문태준 의원은 어디 갔어?』라고 외쳤다.<이창기·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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