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명 숨졌는데 관련자 모두 집행유예" 판사들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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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로 294명이 희생됐고 10명은 아직 실종 상태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 관련 회사 간부들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전국형사법관포럼이 열렸다. 지난 18일 인천 송도에서다.

 올해로 세 번째인 이 행사는 전국 형사재판 담당 판사들이 양형(量刑·형량 결정) 등 사법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날 50명의 판사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간 국민의 눈높이에서 적정한 양형을 해왔는지 되돌아봤다. 먼저 강형주 인천지법원장은 “최근 사법부는 존재 근거인 국민의 신뢰 확보에 큰 위기를 겪고 있다”며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양형을 한다면 사법 신뢰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는 국민과 법관의 인식 차이를 좁히기 위해선 진지한 고민과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대형 참사 관련자들에 대한 법원 양형이 지나치게 가벼웠다는 판사들의 반성이 잇따랐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의 경우 법원은 허위 안전점검표를 작성한 군산지방 해운항만청 소속 공무원 4명 전원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다른 대형참사에서도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 대부분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빠져나갔다.

 이에 대해 상당수 판사는 “공무원들이 안전 관리·점검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데도 법원에서 ‘간접적 영향에 그쳤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회를 맡은 이정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안전 문제와 관련된 국민 법 감정에 극명한 변화가 생겼고, 이를 재판 현장에서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발제자로 나선 심담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대형참사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는 재발 방지와 안전사회를 위한 국민적 염원을 양형에 참작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사고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안전 분야의 부조리한 관행을 눈감아 온 공무원 등에 대해 강화된 잣대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판사들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해서도 “피해자와의 합의를 집행유예의 결정적 사유로 고려하는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범죄가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처벌되는 범죄)였던 시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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