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학문적 권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대학은 3일 입학식을 갖고 새학기를 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대학이 신입생을 맞고 개강을 하는 것은 연례적인 일이지만, 금년만은 이른바 7O년대의 학원사태 등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학생들과 교수들이 복학·복직의 기쁨을 안고 「캠퍼스」에 되돌아 왔기 때문에 각별한 감회와 뜻을 지니고 있다.
새봄과 함께 학원으로 돌아오게 된 복직교수 및 복학생, 그리고 격심한 경쟁을 뚫고 입학의 영광을 누리게 된 신입생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우리는 특히 학생이란 본래의 위치에 복귀해서 학업에 전념하게 된 7백여 복학생들에 대해 그동안 겪은 신고를 충심으로 위로하면서 조국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중대성을 인식, 자중자애하는 자세로 이 나라의 민주발전을 위해 기여해 줄 것을 당부해마지 않는다.
어느 시대·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대학은 그 시대, 그 사회의 지성과 양심의 「심벌」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여기에 더하여 인문의 고차적인 자기실현과 보편적인 문화향상에 기여해야하고 정치·경제·사회를 망라한 전 영역에 걸쳐 장차 중추적 역능을 다해야 할 중차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국가적 요청과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대학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학문적인 권위의 회복, 그리고 이성의 복권이 아닐 수 없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지성인들의 정열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출 해내는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울러 학구적인 분위기가 모든 대학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기를 바라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돌이켜보면 대학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학문적 권위, 학구적분위기에 동요를 가져온 원천적인 책임은 대학 밖의 정치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학 특유의 낭만과 이상을 멍들게 하고 공부조차 못하도록 수백 명의 대학생을 추방한 지난날의 악순환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지금 그것을 따질 계제는 아니라고 본다.
긴급조치의 해제, 복권·복학 등이 민주발전의 분위기 조성에는 기여했을지언정 민주발전 그 자체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학원의 경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학이 안고 있는 산적한 과제들을 풀어 나가는데 있어 제자학생의 복학은 문제의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학기능의 정상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당장 요구되는 것은 사제간, 동료교수간, 복학생과 재학생간의 인간관계가 하루빨리 긍정적으로 융합되는 일이다. 복학생들의 학원을 떠나 있는 동안의 체험, 재학생들의 그동안의 면학결과가 보완적으로 결합할 때 국민 모두가 바라는 학문의 전당으로서 대학의 권위는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학구적인 분위기란 어디까지나 안정되고 차분한 가운데 서라야만 이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대학인만큼 학생들의 자치활동 등으로 활기를 띠겠지만, 그것은 학구적 분위기와는 별개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은 가운데 새학기를 맞은 대학생 여러분은 착잡한 심정 가운데서도 성숙한 지성을 구사해서 무엇이 자신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엄중한 내외여건에 비추어 볼 때 향후 몇 년이 조국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시기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대학생 여러분이 해야할 일이 무엇이라는 해답은 저절로 얻어질 줄 믿는다.
80년대의 새학기를 대학생활의 보람을 다짐하는 전기로 삼아 역사창조의 주역으로서 면학에 정진 해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