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만 이원정부제 규정한 핀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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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홍왕 교수는 지난 1월24일부터 2월8일까지 16일 동안 정부 헌법조사반의 제1반 반장으로 한배호(고대)나종일(경희大)교수, 법제처 한원도 법제관과 합께 영국 「핀란드」「스페인」 「프랑스」등 「유럽」여러 나라의 헌법과 운영실태,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여행을 했다. 문교수의 헌정견문기를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편집자주>

<영국>
영국의 내각책임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서 더 조사할 것이 없었으나 떠나기 전부터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협조를 자진하여 말해오기도 하였는데 영국에 도착해보니 단 하루밖에 기간이 없었지만 영국외무성에서 지방에 여행가려는 교수를 붙들어 주기도 하고, 승용차를 제공하고, 또 저녁에「호텔」특별 실에서 만찬까지 제공해 주는 친절을 보여주었다.
도착 첫날, 잠시 쉬고 바로「로이터」통신기자 「로저즈」씨와 만나 영국헌법에 관하여 1시간 반 동안 질문을 하고 내무성 차관보「존선」씨와 주로 영국의 지방자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밤에는 영국외무성이 베푸는 만찬에서「런던」대학 헌법교수로 유명한「크리크」교수와 식사를 하며 약3시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양대정당제라는 확고한 기반을 둔 영국의 헌정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우리가 「핀란드」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더니「크리크」 교수는 거기에는 전연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민주회복 헌법으로서는 「스페인」헌법이 참고가 될 것이니「스페인」에 가보라고 강력히 권유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대사는 미국에서 많은 공부를 한 분이라고「크리크」교수를 소개했는데 대담에서 그의 해박한 헌법지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음 토요일 한국과 영국의 시차 때문에 수면이 부족한 피로를 풀기 위해 「호텔」에서 쉬었다. 이튿날 일요일 대사관과 영국정부에서 주는 자료를 가지고 제2의 목적지인「헬싱키」로 떠났다.

<핀란드>
천지가 흰 눈에 덮인 영하25도의 「헬싱키」에 도착해 지성구 대사의 마중을 받았다.
대사관에서 준비해놓은 여러 가지 자료에 감사했으며, 더구나 「핀란드」헌법에 관한 지대사의 해박한 지식에 많은 것 을 얻을 수 있었다. 인구4백70만명, 수출88억「달러」로 한국은 「핀란드」에 6천만「달러」를 수출하고 3천6백만「달러」를 수임하는 관계의 나라다.
「핀란드」헌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그 형식면이나, 또 그 실태운영 면에서 많이 달라 참으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느꼈고, 「핀란드」헌법에 관한 국내논의에 많은 착오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이런 점은 우리 일행이 만난「올선」 대법원장, 「핀란드」에서의 헌법의 최고권위자인 「히든」교수,「헬싱키」시의회의장인 「라우렌트」 씨 등과의 2일간에 걸친 대담에서 알게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핀란드」의 헌법에 해당되는 법은 우리가 알고있는「핀란드」헌법(정치법전)·국회법·탄핵법·탄핵재간소법 등 이 네 가지 법이「핀란드」의 헌법이며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이원정제, 즉 대통령과 수상과의 헌법상의 권한분배는 실제에 있어서 그렇게 분배될 수 없고 금요일에 열리는 각의는 대통령이 주재해 여기에 모든 중요문제가 제기되고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금요일 각의를 위해, 사전에 수요일 밤에 대통령관저에서 열리는 간담회에서 협의가 이루어지며 여기에서 합의된 것만이 금요일 각의에 상정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항은 상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헌법조문에는 대통령과 수상의 권한을 분배해 놓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 운영은 그렇지가 않고 대통령이 중요사항을 다 관여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뒤에 「프랑스」에 가서 「브델」교수와의 「프랑스」일원정부제에 관한 면담 때에도 「브델」교수가 강조한 바가 있었다.
「핀란드」는「스웨덴」에 약7백년간 점령당했다가 근세에 와서「스웨덴」이「러시아」에 할양하여 「러시아」에 1백여년 간 속했다가 1917년 독립을 선언해 1919년에 공화국 헌법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소련과 미묘한 관계에 있었으나 오늘날 소련과 우호관계를 맺어「핀란드」의 운명은 대소관계를 뗘나 생각할 수 없는 나라로 되어있다. 국방·외교관계가 특히 그러하다. 「케코넨」대통령은 24년 간의 장기집권을 하고 있으나 이는「케코넨」의 독재에서 그런 것이 아니고 대소의식을 토대로 한「핀란드」국민의 절대지지를 받고있고 4대 정당 중 중도파출신으로 「핀란드」의 중립정책을 잘 시행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한다.
현재 79세의 고령이나 1978년에 또 재선되어 그 임기가 작년에 끝나는데 현 수상「코이비스토」가 겨우 후계자의 자격이 있다하여 물망에 오르고 있다한다.
「핀란드」는 국회의 권한이 강대하며 비상입법은 국회의 6분의5찬성으로 의결하게 되어 있으며 행정부에 법무총재가 있어서 대통령·각 원들의 위헌·위법행위를 억제·고발하게 되어있고, 국회 안에 헌법위원회가 있어서 사전에 위헌법률의 성립을「체크」하게 되어있고 또 국회 안에「옴버스만」이라는 특수한 존재가 있어서 모든 부정 또는 인권침해를 방지 내지 구제하고 있는 특수한 제도를 가져서 대통령이나 정부의 독주를 방지하고 있다.
「핀란든 방문중 가장 놀라운 것은 대법원장을 방문했을 때였다.「핀란드」는 국회나 법원들이 대개 구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구 건물이라고는 하지만 석조이고 내부는 대리석으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장의 집무실은 10평 정도이고 대법원판사회의실도 보았는데 참으로 검소한 것이었다. 인구4백70만 명에 국민소득 6천4백「달러」 (77년 기준)인 그네들도 필요이상의 사치는 하고있지 않았다.78년도의 물가 상승 율이 8%라고 하니 잘 사는 나라다. 얼음두께14m를 뚫고 평상시와 별로 다를 것 없이 항해하게 하는 쇄빙선은 정말로 가관이었다.

<필자=성균관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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