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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은 부부 재산 … 공무원·사학·군인연금도 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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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90년 민법 개정과 함께 ‘재산분할청구권’ 조항이 신설됐다. 이에 따라 부부가 이혼할 때 재산을 분할하는 것이 상식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미래에 받을 퇴직금과 퇴직연금 등 퇴직급여는 나눠 가질 수 없는 ‘성역’으로 남아 있었다. 실제 받을 수 있을지,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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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대법원은 재산분할 제도 도입 후 24년 만에 퇴직급여를 분할 대상으로 인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여성 교사 A씨가 연구원인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어 퇴직급여를 받지 않았다고 해도 분할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이혼할 때 퇴직급여가 확정되지 않은 경우 분할 대상이 되지 않고 기타 사정으로 고려하면 된다’는 기존 판례는 효력을 잃게 됐다. 95년 이후 19년 만이다.

 대법원은 ▶정상적으로 퇴직금을 받는 경우가 훨씬 많아 불확실성이 크지 않고 ▶‘기타사정’의 기준이 불분명하며 ▶이혼 전에 퇴직한 경우와 비교해 불공평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와 함께 이혼 시점에 받고 있는 공무원연금 등 퇴직연금에 대해서도 “혼인 기간 중의 근무에 대한 후불적 임금의 성격을 갖고 있다”며 분할을 인정했다.

 이 같은 판례 변경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황혼이혼이 늘면서 퇴직급여의 재산 가치가 갈수록 커지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2009년 22.8%에 불과했던 황혼이혼 비율은 지난해 28.1%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2년 기준 81.2세로 늘었다. 여성 배우자에게 50%가 넘는 재산을 나눠주라는 판결도 1998년 5.4%에서 2012년 22.5%로 늘었다.

 하지만 판례가 아닌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혼인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 이혼한 배우자로부터 연금 중 50%를 받을 수 있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법원 판례를 통해 퇴직금 수령 시기가 5년 안쪽인 경우 분할 대상으로 삼도록 한다. 판례 변경에 따른 변화를 문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Q. 1년 전 아내와 이혼을 했다. 퇴직금을 나눠줘야 하나.

 A. 협의 이혼을 했거나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내 확정 판결을 받은 때에는 재산분할 소송을 새로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이혼 소송을 하면서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았다면 이혼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청구할 수 있다. 현재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새로운 판례가 적용된다. 남녀 구분 없이 상대방에게 퇴직금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Q. 퇴직금을 언제, 어떻게 나누나.

 A. 이혼 소송을 낸 뒤 사실심(1·2심) 변론을 마치는 시점에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 나눠 갖는다. 현재 받고 있는 퇴직연금의 경우 매월 일정한 비율을 정해 정기적으로 상대방에게 지급해야 한다. 퇴직연금 분할 비율은 전체 재직기간 중 혼인기간이 차지하는 비율과 직업, 가사·육아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한다.

 Q. 다른 연금에도 영향을 미치나.

 A. 공무원연금뿐 아니라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다른 공적 연금에도 새로운 판례가 적용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혼인기간이 5년 이상인 경우 이혼한 배우자의 연금 중 혼인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의 절반을 지급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연금보험도 예금과 마찬가지로 혼인기간에 모아온 재산이란 점에서 분할 대상이 된다.

 Q. 퇴직금을 나눠주지 않겠다고 버티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분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가정법원이 강제로 이를 따르게 할 수 있다. 법원이 이행명령을 내리고 이를 어길 때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3번 이상 어기면 30일 이내의 감치도 가능하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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