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IBM, 어제는 적 이제는 동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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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세계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이 금언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애플과 IBM 이야기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와 버지니아 로메티 IBM CEO는 15일(현지시간) ‘iOS용 IBM 모바일퍼스트’라는 양사간 글로벌 파트너십 협약을 발표했다. 핵심은 기업 업무용 앱을 공동 개발하고 IBM이 기업에 판매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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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PC 표준화 놓고 으르렁

쿡(左), 로메티(右)

 양사는 소매업·헬스 케어·은행업 등 산업별로 특화된 100종 이상의 업무용 앱을 올 가을 선보일 예정이다. IBM은 애플 iOS에 최적화된 클라우드 서비스도 개발하기로 했다.

 양사의 제휴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30년전 애플과 IBM은 숙적 중의 숙적이었다. 두 회사는 막 보급되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PC)시장에서 누가 표준이 되느냐를 놓고 각축을 벌였다. 뛰어난 그래픽과 안전성을 자랑했던 애플의 매킨토시는 장점이 많은 PC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저렴하고 호환성을 강조했던 IBM컴퓨터에 몰렸다.

 결국 이 싸움의 승자가 된 IBM이 초기 PC 시장의 맹주가 됐고, 애플은 전문가용 PC 업체로 위축됐다. 양사의 적대 관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1984년 미국 미식 프로축구 결승전인 슈퍼볼 TV중계에 등장한 매킨토시 광고가 상징한다. 애플은 광고에서 IBM을 조지 오웰의 미래소설 ‘1984’에 나오는 독재자 ‘빅 브라더’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당시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누리던 IBM이 시장의 자유와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애플=개인, IBM=기업 강점 결합

 PC 시장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양사의 진로는 엇갈렸다. IBM은 2005년 PC 하드웨어 사업을 레노버 그룹에 팔고 업무용 소프트웨어 서비스 업체로 거듭났다. 애플은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복귀 이후 회사의 무게 중심을 아이폰 등 모바일로 옮겼다. 앙숙이었던 양사가 손잡은 건 사업적 필요 때문이었다. 애플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시장에서 성장속도 정체에 직면해있다.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던 애플에겐 기업 업무용 기기 시장이 절실했다. 기업들이 보안성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스마트폰이나 탭 사용을 꺼리면서 무주공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은 기업 고객을 다뤄본 경험이 빈약했다. IBM은 기업 맞춤형 솔루션 제공업체로 변신했지만, 최근 영업이익 감소에 시달리고 있었다. IBM은 애플 제품의 상징인 단순함과 명성이 필요했다. 업무용 기기 시장도 변화중이었다. 스마트폰이나 탭에 익숙한 직장인들은 회사에서도 모바일 기기 사용을 원했다. 애플과 IBM 모두 이번 제휴에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팀 쿡은 “1984년에 우리는 경쟁자였다. 2014년, 우리는 최상의 보완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포레스트 리서치의 프랭크 길레트 애널리스트는 “획기적인 합의”라고 평가했다.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가 있다. 팀 쿡이다. 그는 잡스 사후 3년 만에 배타적이기만 했던 애플의 태도를 개방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잡스가 지독히 미워했던 구글과의 특허전쟁을 매듭지은데 이어 또 다른 적수였던 IBM도 끌어안은 것이다.

배타적 애플 문화, 개방화 움직임

 IBM은 팀 쿡이 애플로 옮기기 전 몸 담았던 친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파트너십에 대한 평가는 시장이 쥐고 있다. 애플 주가는 이날 발표 후 시간외거래에서 1.6%, IBM 주가는 2% 뛰었다. 공룡들의 제휴는 다른 기업들의 합종연횡을 불러올 전망이다. 당장 애플과 운영체계(OS)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한때 업무용 기기 시장의 강자였던 블랙베리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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