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원의 「제7대륙」…"여기는 소련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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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비도 없는 눈 속의 집 7채
지난해 12윌16일 아침 남극 「킹·조지」도 앞바다. 남위 62도12분·서경 58도54분-. 소련의「벨링즈하우젠」기지.
「칠레」의 남단 「푼타아레나스」항을 떠나 남극항해에 나선지 6일째, 「앤버스」도의 취재를 마치고 「킹·조지」도에 온 남극 취재반원들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1년전 일본이 우주중계위성을 띄워놓고 대규모의 NHK 특별취재단을 남극에 보내어 곳곳에「카메라」를 들이대고 생중계방송을 할 때 유일하게 취재 거부를 당한 곳이 바로 소련의「벨링즈하우젠」기지였다.
해발1백m나 될까.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하고 시골 국민학교의 운동장 5배쯤은 됨직해보이는 평지에 7채의 한일자 건물이 눈 속에 잠들어 있었다. 움직이는 사람이라곤 보이질 않았다.
「조디액」이라는 고무「보트」를 몰아 10분. 정박중인 2천4백t짜리 극지쇄빙선「린드·브래드·익스플로러」오에서「킹·조지」도에 상륙했다. 소련기지의 첫 건물은 연안에서 8백m쯤에 있었다.
철조망 등 아무런 경계도 파수병도 없다. 취재반원 4명은 태극기와 사기를 매단 작은 깃대를 앞세워 들고, 소련기가 나부끼는 제일 큰 건물을 향해 눈구덩이를 걸어갔다.
『꾸르르…륵-.』
느닷없이 큰 소리가 울렸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눈덩이 저 뒤에서 「펭귄」 두 마리가 사람을 보고 놀라서 그랬는지, 반가와서 그랬는지 부리를 하늘로 향해 큰소리 친 것이었다.
거대한 물오리리차(상륙용주정)가 한대 눈에 띈다.「트럭」 몇대쯤은 실을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잠수정 한대가 언제 양륙해 놓았는지 낡은 모습으로 버려져 (?) 있었다.
기념「페넌트」·담배 등 교환
큰 건물앞에 3m 높이의 나무 이정표가 눈길을 끌었다. 「모스크바」가 1만6천l백km, 「런던」이 1만5천7백8km 등 목판에 쓰여 있는데 동경은 1만3천9백40km였다.
큰 건물의 복도를 들어서자 검은 수염의 키 큰 사나이를 만났다.
우리는 소련 기지대장에게로 안내됐다.
「벨링즈하우젠」기지대장「브라드밀·스피츠킨」박사(50)는 머리가 반들반들하고 섬섬약질같은 체격, 깔끔한 샌님인상의 천문기상학자다.
우리가 명함을 내밀자 그도 선뜻 명함을 내주었다.
그에게 태극기와 사기가 박힌 남극취재단 기념「페넌트」·거북선담배와 자개합 담배갑 등 기념품을 주었다.
그는 태극기를 유심히 들여다 본 다음 밝게 빙긋 웃더니「벨링즈하우젠」기지 기념「페넌트」와 소련제 고급담배 4갑 등을 내놓았다.
그는 떠듬떠듬 서투르게 영어로 「인터뷰」에 응했다. 부임한 지 보름밖에 안됐고 앞으로 1년반을 근무하게 되며, 「벨링즈하우젠」기지는 주로 기상학을 연구하는 순수과학연구기지라는 등 해설이었다.
그는 부대장「알렉세이」(38)를 불러 소개한 다음 기지를 안내해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시골영감같은「알렉시이」는 기관실·발전실·병원·복잡한 측량기계가 있는 연구실·대원들의 침실·부엌구석까지 남김없이 자세히 보여주었다.
「킹·조지」도의 소련기지는 기자들이 방문했던 남극의 어떤 다른나라 기지들보다도 깨끗하게 잘 정리돼 있었고 시설이 좋았다.
"21세기에 가야 개발 가능"
영어를 못하는 「알렉세이」였지만 자기의 침실로 기자들을 데려가 맥주를 딴다, 담배를 한갑씩 권한다, 영화 「필름」을 보겠느냐, 당구를 치지 않겠느냐…철철 넘쳐흐르게, 그러나 차분하게 갈수록 친절이다.
2시간 여에 걸쳐 소련기지를 자세히 관찰한 다음 다시 기지대장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언제 건설된 기지입니까?』
『68년.』
『대원들은? 하는 일은?』
『34명이 1년반 임기로 「로테이션」 됩니다. 12명이 기상학·생물학 학자들이고 나머지는 의사·기계기술자 등 보조요원들입니다. 아시다시피 남극의 얼음덩이는 지구의 일기장입니다. 저 거대한 얼음덩이 중 두께가 4천m나 되는 것들은 10만년 이상 쌓인 것들입니다. 매년 쌓인 눈의 층을 분석하면 홍적세·신생대 등 지구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남극은 인류에게 남아있는 최후의 제7대륙인데, 21세기에 가서나 개발이 가능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남극의 기상·생태학 등을 연구해야 합니다.』
「스피츠킨」박사는 여러권의 책을 펴 보이며 설명하다가 영자 「타이프」를 쳐가면서 「해설」에 열을 올렸다..
「11년동안 성과가 많았겠습니다.」
이 질문에 그는 어깨만 움찔하고 대답을 안했다. 남자만인 34명의 대원들. 그들은 외출도 별로 없고, 하루 5시간정도 남는 자유시간은 당구·영화감상·책읽기로 시간을 보낸단다. 제일 즐거운 것은 편지써 보내고, 편지받는 것이라고.
중앙일보·동양방송 남극답사반
손석주(주간부장) 이영종(보도국촬영부) 김택현(담당부차장) 남성우(TV·PD)
벨링즈하우젠(소련기지)에서 글 손석주·사진 김택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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