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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문학<시> | 김종길 <고대 문과대학장·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80년대에 우리 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어떻게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질문은 액면대로 받아들일 때 허무맹랑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앞으로 10년 동안의 일을 점치고 바라는 것이 그대로 맞아떨어지거나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시와 시인에 관한 경우가 특히 그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물음에 해답을 시도하는 일은 적어도 한가지 점에 있어서는 무의미하질 않다. 즉 그것은 우리 시의 현황을 확인하고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미래를 생각할 때 우선 길잡이로 삼는 것은 과거와 현재다. 우리는 과거가 현재를 모양지은 만큼 현재도 미래를 모양지으리라고 기대한다. 이 기대는 전적으로 타당한 것은 못된다 하더라도 또한 전적으로 버려야 할 것만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이 경우 우리의 점은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 셈이다.
지난 60년대 이후 우리 시단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으로서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시단 인구의 팽창과 그에 따른 작품의 대량 생산이다. 이 경향은 고등교육의 보급과 출판문학의 성장 등 외적 요인의 작용도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시인 배출 제도의 확산과 기준의 저하에 의해 촉진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추세 가운데서 시의 평균수준이 높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마련이다.
한 예를 들면 근년의 각 신문의 신춘문예에 투고되는 작품이나 당선되는 작품의 일반적인 수준은 60년대나 70년대 초기의 그것에 비해 저하된 느낌이 있다. 이러한 현상과 시단의 평균수준이 무관하지 않은 것은 습작기의 신인들이 현 시단의 추세에 가장 민감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고 활자화할 사람들의 수효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우리 시의 평균수준도 저하될 위험이 있다. 이와 병행해 시의 경향이나 기준이 다양해질 것도 예상되지만 그것은 반드시 좋은 뜻의 다양성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시단에서는 그간 문제되었던 난해성이니, 순수와 참여의 대립이니 하는 것들이 많이 청산되기도 했지만 어떤 시가 좋은 시이고 어떤 시가 그렇지 못한 시인가에 대한 기준은 분명치 않아진 듯한 느낌이 있다.
이러한 추세가 앞으로 계속되는 경우 우리 시는 질적 저하와 비평적 기준의 모호와의 악순환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같은데서도 이미 일어난지 오래다. 시를 쓰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일정한 시적 기준으로 볼 때 거의 중구난방 격인 무정부상태가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창조는 혼돈 속에서 이루어진다고도 하고 대중의 표현욕구의 발산을 막을 필요도 없지만 시를 우리의 문화전통의 한 부분으로 보는 한 우리는 정통적인 비평적 안목을 버릴 수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더욱 절실히 요망되는 것이 엄정한 비평적 지성의 확립이요 견지다.
그러나 비평적 지성은 비평가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써서 발표하는 작품이 무슨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를 시인 스스로가 적절히 따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그 작품은 시로서 무의미하기 일쑤일 것이다.
시의 의미나 가치의 기준은 이론적으로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당한 훈련과 경험을 쌓은 사람, 적당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대체로 체득되는 법이다. 시인에게는 물론 재능도 필요하지만 그것에 못지 않게 공부도 필요하다. 80년대에는 재능과 공부를 함께 갖춘 시인과 비평가가 많이 나타날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간 우리 시단도 세대교체가 급속히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해방 전에 등단한 시인으로 아직도 작품활동을 하는 분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해방 후에 등단한 시인들이다. 그 중에서도 40세 미만의 시인들이 수적으로는 압도적이다. 이들과 그 앞 세대와의 사이에는 현저한 감수성의 차이도 있을법하고 또 있어도 보인다. 그러나 그 차이가 비평적 기준의 완전한 분리를 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구세대 사이의 상호조정은 시단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시단의 외적인 고려에 주어진 지면을 거의 다 써버렸으나 끝으로 좀 다른 각도에서 우리 시의 앞날을 내다보고 내 나름의 희망을 덧붙일까한다. 그것은 앞으로 국내의 정치적 발전이 순조로이 이루어질 경우 우리 시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다. 4·19직후의 경험으로 보아 정치적 자유의 증대는 그 자체 바람직하면서도 시정신의 일시적인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편 그러한 상황은 이른바 참여파 시인들 사이에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변화란 그들이 좀 더 개인적인 목소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뜻한다. 좋은 시란 사상이든 신학이든 도덕이든 관념이 앞서는 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긍정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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