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의 강 | 박태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산과 산이 맞대어
가슴 비집고 애무하는 가쟁이 사이로 강이 흐른다.
온 세상의 하늬 쌓이듯 눕는 곤곤한
곤곤한 혼탁.
멀어져 나가는 구름모양
한없는 나울을 깔면서
대안의 호야불을 찾아나서는 물길.
물위로 물이 흐르듯 얼굴을 가리며
무엇이 우리의 슬픔을 데려왔다 데려가는가.
열목어 열목어는 온통 강물에 열을 풀고
무수히 잘게 말하는 모래의 등덜미로
우리의 사랑이란 운명이란
말할 수 없는 슬픔이란 그런 그런 심연을 이루어
인간의 아이들처럼 아름다운 깊이로 출렁이면서
강을 흐르는 사계의 강.
산과 들이 한가지 모습으로
무덤을 이루어 있는 강안에 서면
귀밑머리 달도록 예쁜 지평선은
우리 버려진 나이를 위한 설정이다.
아, 하면 아, 하는 하늘
오, 하면 오, 하는 산
많이 추위와 살 비비는
손과 손의 가장 곱게 펴진 그림자 위에
한 방울 눈물을 올려놓고
이승은 온통 꽃이파리 하나에 실려가고
다시는 그림자 하나 세상에 내리지 않는다.
하늘로 트이는가, 혈맥
태를 감는가, 산악
손벌려 앉아 우리는 끝내 무엇이 되고싶은 것일까.
강은 순례,
눈 들면 사라지는 먼 먼 마을의 어두움도 따라나선다.
길 잘못 든 한 아이의 발소리도 들리고,
산이 버린 산
사람이 버린 사람의 백골이 거품을 토해내는 것도 보인다.
죽음이란 온갖 낮은 죽음과 만나
저들을 갈대로 서있게 한다.
실한 발목에 구름도 이제
묵념처럼 하얗게 죽는다.
돌아다보고 옆눈 주는 어두움
그 흔적 없다는 이름의 길을 따라
꽃을 배슬은
나의 기억은 여기에서 끝난다. 강이여.
산과 들이 한가지 모습으로
무덤을 이루어 있는 강안에 서면
우주의 능선에 달이 뜨고
까칠한 욕망의 투구를 흔들면서
나는 빛나는 스물의 갈대밭, 흑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