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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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앙「아시아」의 지도를 펼쳐 보면 「아프가니스탄」은 마치 십자로의 한 복판 같다.
북쪽엔 소련, 서쪽엔 「이란」 동남쪽엔 중공과 「파키스탄」, 네 나라가 둘러싸고 있다.
북쪽의 소련세가 남진을 계속한다면 「파키스탄」·인도가 위협을 받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중공을 포위하는 셈이다. 이것은 오늘의 감각으로 본 가상전략이지만 옛날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동서남북으로 통달하는 내륙교통의 요충이었다. 「징기스칸」이나 「티무르」가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끝도 없이 뻗어 간 길목이 바로 이곳이었다. 「알렉산더」대왕이 「다리우스」의 왕녀 「록사나」와 결혼한 곳도 「아프가니스탄」의 고도 「발라크」였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이곳은 대리석 궁전과 웅장한 광장이 있는 화려한 도시였던 모양이다.
오늘의 「아프가니스탄」은 그 면적이 한반도의 3배쯤 된다. 인구는 정확한 「센서스」는 없지만 약 2천만명. 80%가 농업과 목축업에 매달려 산다. 개인소득이 1백25「달러」쯤인 것을 보면 가히 그 생활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나라와는 이미 1973년부터 수교, 지난해는 11월말 현재 7백75만「달러」 상당의 물품을 이 나라에 수출했다. 합성섬유·「시멘트」·석유제품·향료 등이 그 주요 상품이다. 그러나 78년 「타라키」 정권 이후 우리 나라와의 외교관계는 단절 상태.
정치적으로는 명암이 교차하고 있다. 1919년 5월 영국의 보호령에서 풀려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나라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1929년엔 헌법이 제정되고 의회가 설치되는 등 근대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뒤를 이어 암살과 정권 타도가 잇따르는 정치 후진국의 너울을 벗지 못했다. 1964년 이후엔 개헌에 따라 잠시 민주주의의 당풍이 부는 듯 했다. 하지만 10년도 못되어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후 5년만에 또 다시 「쿠데타」. 그 동안 공산당계의 비합법 정당이었던 인민민주당의 「타라키」 서기장은 이때 감옥에서 나와 집권했다.
「타라키」는 특히 빈부의 격차가 심한 가운데 빈민들 틈에 인민민주당의 뿌리를 내렸었다. 소련과는 그해 우호조약을 맺고 주종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타라키」도 1년 몇 달만에 「아민」의 「쿠데타」로 쫓겨나고, 「아민」은 다시 지난해 12월 27일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소련은 줄곧 그 배후 세력으로 작용하며, 자신의 세력을 다져 왔었다. 이 나라는 후진국의 전형적인 「모델」이 된 셈이다. 오늘의 어둡고 추운 상황은 정치 악순환의 시말을 한눈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인의 주류를 이루는 「파시툰」족은 전통적으로 독특한 민족정신을 갖고 있다. 용기·자유·독립. 비록 오늘은 소련군의 「캐터필러」에 짓밟히지만 언젠가는 「파시툰」의 정신이 불길을 뿜을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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