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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공동체 정신이 필요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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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어떤 사람이 “예술이란 화가가 팔아버린 그림이다”라고 한다. 이상한 사람이다. 때로는 거룩하고 때로는 고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오한 예술을 고작 팔아버린 그림이라고? 미학으로 밥 먹고 사는 필자의 자존심을 확 긁어 놓았지만, 좀 더 들여다봤다. 그림과 예술을 구분하고, 화가가 그린 그림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말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라파엘로나 휘슬러나 드가의 예술작품을 볼 때 우리는 라파엘로가 호색가였고 휘슬러가 멋쟁이였고 드가가 심술 맞은 노인네였다는 것을 조금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점들이 그들 작품의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을지라도, 지금 그 작품을 보는 우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화가가 붓을 놓는 순간 그 그림은 화가를 떠나 예술이 되기를 고대한다.

 언제 예술이 될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고, 사고 싶을 정도로 감동을 줄 때 화가의 그림은 비로소 예술이 된다고 한다. 화가는 붓과 물감으로 세계의 모습과 세상살이를 해석해 놓는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아이디어와 제작 방법을 보고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생각에 공감을 갖게 될 때, 그 공감의 정도가 그 그림을 사고 싶어 할 만큼이 될 때 그 그림이 예술이 된다는 말이다. 예술가와 감상자의 소통에 의해서 예술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공감과 공동체 정신이 필요할 때다. 진한 슬픔과 아픔을 겪고 난 후 제 각각으로 내놓는 해답들이 우리를 더 답답하게 만든다. 일을 더 꼬이게 하고 분열만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렇게 가슴이 답답할 때 미술관이나 화랑을 찾아 그림을 보면서 공감의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미술작품에 담긴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같이 느껴 보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다. 거창한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그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작은 화랑이라도 들어가서 그림 앞에 마주서 보자. 유명한 그림이 아니어도 좋다. 자기가 좋아하는 구상화도 좋고 수채화도 좋고 조각 작품도 좋고 컴퓨터로 희한하게 만들어 놓은 작품도 좋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면 어떤가. 그 앞에서 한번 그 작가의 마음이 되도록 해보는 것이다.

 그림 앞에서 공감을 갖는 것이 말처럼 쉬울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잘 모르겠으면 주저하지 말고 작가에게 물어 봐도 좋다.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왜 빨간색을 칠했느냐? 왜 조각 작품에 녹슨 철을 사용해야만 했느냐? 는 등. 작가도 자기 작품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한다. 우리와 대화를 나누면서 작가 자신도 자기 작품에 대해 정리를 하게 된다. 작품을 만들면서 애매했던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대화를 하는 동안 분명해진다고 한다. 작품의 의미란 우리와의 소통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자.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림을 보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공감의 시간을 갖고 거리로 나오면 주변 사람들이 달라 보이지 않을까? 남의 말을 좀 더 귀담아 듣게 되고, 남을 이해하려는 습관도 생기지 않을까? 그림 앞에서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때의 공감을 위한 훈련이 일상생활에도 이어진다면 고단한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곧 휴가철이 된다. 벌써부터 피서지의 예약이 넘치고, 인천공항도 북적인다고 한다. 많은 일로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멀리 떠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필요할 때이니까. 금년만큼은 그런 휴양과 피하는 시간 대신 미술 작품 앞에서 공감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그 시간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쌓여서 공감의 힘이 사회 전체에 퍼질 때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신도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이 누구였냐고? 『화가의 눈(The Painter’s Eye)』이란 책을 쓴 모리스 그로서였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