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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향해 "미국의 가치 수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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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라크전이 미국의 '손쉬운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그동안 이라크 선제공격론을 줄곧 주장해왔던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정부 내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ves)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상원외교위는 지난 7일 청문회(주제:이라크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열면서 대표적인 신보수주의 잡지인 '위클리 스탠더드'의 윌리엄 크리스톨 편집인을 첫째 증인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이들 그룹은 미국 외교.국방정책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신보수주의의 흐름과 주도세력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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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수주의의 뿌리=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뒤 '정치철학'분야를 개척했던 시카고대 레오 스트라우스 교수가 사상적인 씨를 뿌렸다.

스트라우스는 1940년대 미국 사회에 팽배했던 진보주의가 과거 나치에 의해 와해된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의 이념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20세기 초 서유럽을 휩쓸었던 진보주의는 평등화를 주창하면서 개인과 사회에 대한 국가의 개입도 주장했다.

그는 평등보다는 도덕적 가치와 절대적 선(善), 그리스도 신앙, 종교의 사회적 기여 등을 강조했다.

같은 시카고대 학맥인 앨런 블룸 교수와 폴 울포위츠(현 국방부 부장관)교수는 미국적 가치의 세계화를 주창하면서 '도덕적.문화적 우월주의'이론을 이어갔다.

유럽과 달리 귀족제.신분제를 경험하지 않은 미국은 자유를 바탕으로 문명의 꽃을 피웠고, 그래서 이를 보수(保守)하고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미국식 민주주의만이 대량학살과 같은 국제적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며, 민족.국가.주권이란 개념은 자칫 전체주의.독재체제를 비호하는 보호막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과감히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보수주의와 구별된다. 보수주의는 미국 내부의 전통적 질서.가치의 보전에 최우선을 두면서 외교적으로는 타문화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미국기업연구소(AEI)를 설립한 어빙 크리스톨은 1983년 자신을 포함한 새로운 보수주의자들에게 네오(neo.新)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신보수주의 이론화에 기여한 울포위츠는 지금 국방부 부장관을 맡고 있다. 그는 91년 걸프전 때 국방차관으로 다국적군이 바그다드까지 진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딕 체니, 현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즈펠드 등도 신보수주의 그룹에 포함된다.

◆날개를 달아준 9.11테러=이들은 클린턴 행정부 집권 때 목소리가 줄어들었다가 97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단체로 다시 모였다. 유대인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이스라엘 보호, 팔레스타인 정권교체,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론'이라는 중동정책도 나왔다.

이들은 2000년 대선 때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밀었다. 그가 경선에서 패했지만 그룹의 대부격인 딕 체니가 부통령이 되면서 이들은 건재할 수 있었다.

정권 초기 부시 대통령은 파월 장관 등 온건파를 내세워 이들을 견제했으나 9.11테러가 터지면서 이들의 논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됐고 그 결과가 '악의 축'발언으로 나타났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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