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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주변상황따른 인간의행위 설명 전상국의『실반지』|삶의 본질적문제를 깨닫는 과정을 추적 이문열의『그겨울』|조직사회의 힘에 압도되는 개인의 의지 송상옥의『벗은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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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설의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소설의 세계에서 중요시되고있는 인간과 상황의 경험조차도 그것들이 실제로 유래한 사회적 현실과 너무 쉽게 연결되어버리는 경향을 흔히 볼수있다.
하지만 소설이 상상적 선택이라는 창작 행위의 한산물 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코 현실 그 자체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 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소설에서 새로운 인간경험의 창조를 내세울 경우에도, 사물이나 사건이나 사회제도 같은 것은 작가의 주된 관심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작가는 인간이 자기 이외의 모든 것들에 반응하는 태도와 감정에 그의 관심을 집중한다. 소설이 인간 유형의 의미 있는 초상을 제공한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한다.
이문열씨의 『그 겨울』 (문학사상) 은 인간의 삶의 의미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대학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도시를 떠나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며 갖가지 삶의 방식을 체험하게 되는 주인공의 방황의 여로에 놓여있다.
여기에 겨울이라는 시간적 관념이 결합됨으로써 소설적 짜임새가 요구하는 구조의 확실성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개인적 의식의 변모과경을 그려내는 데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삶의 전체적인 모습을 형상화 하는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설속의 주인공이 근거없는 절망과 허무에서 벗어나 절망이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실천적 결단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더구나 자학에 가까운 방랑의 과정에서 맞부딪친 사회적인 실상의 단편들을 통해 인간조건의 외부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만을 키워나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진실 위에 서지 않은 관념적 선택에 불과했다는 자기 인식을 지니게 된것은 값진 결과임에 틀림없다.
송상옥씨의 『벗은 혼』 (현대문학) 은 일상적인 생활의 틀속으로 갑작스럽게 파고 들어온 자기 파탄의식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 소설에서 인간을 둘러싸고 었는 사회라든가 그가 영위하고 있는 생활이라든가 하는 기존의 모든 질서를 언제나 견고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기계적인 생활이 갖는 맹목적인 속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설의 주인공은 직장을 버리고 자신을 위한 자기 일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의 현실에 대한 거부행위는 그의 삶에 끝내 명료한 의미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공식적인 사회관계에서 벗어나자마자 자신의 존재가 자기만의 힘으로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며, 숱한 방황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을 위해 할 수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작중 학자인<나>의 관점을 통해 주인공의 생활주변과 의식세계를 더듬는 소설적 수법이「스토리」의 전개에 적중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기계적인 조직사회의 거대한 힘에 의해 개인적 의지가 여지없이 파괴당할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전상국씨의『실반지』 (현대문학)가 보여주는 현실적 상황과 삶에 대한 접근방식 또한 관심을 요하는 문제다. 작가는 인간의 행위를 밝히고 요약할 수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그 인간 자체의 개인적 속성에서 찾으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면화된 인간의 감성이나 사상이 소설적 주제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이소설에서, 조직적인 사회와 일상적인 삶에 대한 적응문제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희생에 대하여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예리한 비판은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현실 상황 그 자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민족적 비극의 역사체험까지도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소설이 현실의 가장 자유로운 양식화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삶에 대한 작가의 폭넓은 인식과 가치판단의 명료성을 필요로 한다는, 엄연한 사실이 이소설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된다는 점도 언급해두는것이 좋겠다. <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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