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상대 누르는 승부수 되려면 쉽고 간결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3호 10면

조지 레이코프(73·사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학기의 첫 강의를 똑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성공한 학생은 10년 가까이 한 명도 없다.

프레임 이론가 조지 레이코프

 프레임 이론의 세계적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선거전략 프레임을 분석한 책 제목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지었다. 코끼리는 미 공화당의 상징(민주당은 당나귀)이다. 레이코프는 민주당 지지자다. 인지과학·언어학에서 출발해 프레임 이론을 구축했다. 책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수정·증보판을 준비 중인 그가 축약본을 중앙SUNDAY에 보내왔다.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본지와 했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프레임에 야권의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말려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과도 그대로였다.

 그가 책을 냈던 2004년 미국 민주당 역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패했다. 2000년에 이은 두 번째 패배였다. 레이코프는 패인을 공화당의 ‘세금 구제(tax relief)’ 프레임으로 봤다. “똑같이 세금을 줄여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금 감면(tax reduction)’이 아니라 세금 구제라는 용어를 쓴 것은 세금에 억눌린 이들을 부시가 구해준다는, 영웅 프레임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부시 측에서 이 말을 반복해 쓰면서 언론과 대중도 친숙해졌다. 민주당이 ‘그게 무슨 세금 구제냐, 거짓이다’며 반발하자 오히려 ‘세금 구제’ 프레임은 더 공고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레이코프가 프레임 이론에 천착하기 시작한 건 1994년이다. 20년이 지났지만 프레임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견해다. 권력을 잡기 위해 선거는 필수적이며, 선거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한 수단인 언어는 정치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로 만들어낸 대결 구도는 유권자의 뇌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지배한다. 프레임은 현실 정치에서 유용한 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그는 특히 언어의 힘을 강조한다. 쉬운 말, 긍정적 언어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게 선거 승리의 기본 요소라는 얘기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처럼 핵심 지지층이 아닌 부동층이 선거의 주요 변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프레임은 더 중요한 기제라고 한다. 정책이 아닌 프레임이 선거에서 유용한 무기로 쓰인다는 것이다. 정당의 지지자들이 아니고서야 그 정당의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부동층은 자연스럽게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각 당의 프레임에 영향을 받으며 무형의 이미지를 쌓게 된다.

 그는 프레임 선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상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반응하면 할수록 유권자들은 그 프레임에 노출된다. 재빨리 다른 프레임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이와 관련, 서울대 이준웅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햇볕정책에 반대한 ‘대북 퍼주기’ 주장이 상대편 프레임 속에서 이를 깨뜨린 거의 유일한 경우”라고 했다. 미리 쳐놓은 프레임의 울타리에 예리한 카운터펀치를 날린다는 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북 퍼주기 프레임도 햇볕정책이 나온 뒤 오랜 기간이 지나고 나름의 경험이 쌓인 다음에야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레이코프는 스토리도 강조했다. 그는 “기승전결의 내러티브를 형성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반응한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간결한 단어로, 귀에 쏙 들어오는 말로 프레임을 짜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언어도 필수 요소라고 레이코프는 설명했다. 예컨대 “진보 진영이 부동층을 끌어들이고 더 많은 유권자를 포섭하고 싶다고 해서 이념 스펙트럼을 오른쪽으로 옮겨선 안 된다. 핵심 지지층의 표를 잃을 뿐 아니라 보수층에게 ‘봐라, 진보 진영도 우리의 언어를 쓰지 않느냐’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