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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이굴적의 국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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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일은 31돌 「국군의 날」. 이 날은 6·25동란 때 국군의 선봉부대가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하여 실지회복의 첫발을 디딘 날이기도 하다. 「생일잔치」를 마다하고 실지회복에 일보를 내디뎠던 날에 「국군의 날」을 기리는 뜻을 우리 국민은 저버릴 수 없다.
48년에 창설된 국군은 그동안 공비토벌, 6·25동란, 월남전 등 그야말로 하루의 영일도 없이 북괴의 무장 도발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혈투를 되풀이하며 한세대를 보내고 이제 장년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국군은 휴전조인 이래 그 어느 때보다 공세적이고 가장 증강된 괴뢰군과 대치, 공전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군의 성장을 회고해보면 10만 미만의 소수 병력이 일본 패잔병이 남기고 간 구구식 소총으로 무장, 창설된 뒤 이제는 각종 소화기는 말할 것도 없고 155mm곡사포를 포함하는 모든 지상화기와 대공「벌컨」포·장갑차·「탱크」, 그리고 고속함정·무장「헬리콥터」등 최신 중장비를 양산하여 64만 대군을 무장시키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군사과학기술에 있어서도 세계 7번째로 2단계 유도탄의 시험발사에 성공하고 신예 전투기의 국내생산과 잠수함의 건조에까지 손대게 되었다.
이처럼 급성장한 방위산업은 말할 것도 없이 자주국방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진 구체적이고 고무적인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조급한 개발과 생산압력이 가령 품질관리나 관리체제에 문제점을 배태할 수도 있다는 외국 선진과학기술진의 충고는 외면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정신전력>
흔히 무기가 칼날이라면 정신은 칼자루라고 말해지지만, 자체의 기술과 자원으로 최신 무기와 장비를 생산하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 무기와 장비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전술전기·지휘관리·전투의지 등 한마디로 정신전력의 문제다.
개인화기 또는 공용화기 생산에서 한국인의 평균체격과 체력에 맞게 인간공학적 검토를 가하는 문제, 국토의 지형조건과 지리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부대편성과 장비의 특수화문제, 그리고 북괴의 고유전법에 대처하는 전술교리상의 수정개편의 문제등 단기간에 미군식 편제와 장비에서 자주태세로 전환한 오늘의 군에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지휘 관리면에서의 도전도 시급한 해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불어나는 현대적 무기와 장비의 관리는 불가피하게 요원의 기능화, 기능의 다양화를 수반할 것이며 때문에 지휘권의 분권화는 필연적 요청이 될 것이다.
도대체 현대적 군대란 소단위편성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런 편성의 기본은 하급 지휘관의 창의를 살려 미묘하고 변화무쌍한 전술상황을 타개해 나가자는 데 있다. 한 장수의 「호령」으로 대군을 움직이는 전근대적 지휘방식보다 예하 지휘관의 창의와 재량을 유도하는 「훈령」에 의한 지휘가 전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는 실험 결과다.
더욱이 이런 현대적 군 개념에서 보면 북괴군은 전체주의적·권위주의적인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전근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요, 이런 약점 때문에 저들이 다른 모든 부문을 희생시켜가며 쌓아올린 군사장비면에서의 우위도 별로 두려울 것이 없다.

<자위의 의미>
그러나 과연 우리 국군의 경우 하급지휘관의 젊고 발랄한 영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근대적 지도성에서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 있느냐하는 문제는 되풀이 반성하고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전쟁은 결국 의지의 싸움에서 시작하여 여기에서 끝나는 것. 한 미국전략가가 『핵전쟁을 예방하는 길은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의지에 있다』라고 말한 것은 통상전쟁에서도 그대로 해당된다.
휴전이래 26년 간 북괴의 재침야욕을 미연에 봉쇄한 것은 역시 국군장병의 견결한 전투의지와 드높은 사기였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부전이굴인지병)이 최선의 승리라고 말해지지만 국군은 지상에 유례 없는 호전광의 집단과 장기간 대치하여 참으로 명예로운 승리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미개사회에서 재앙이 발생되는 경우 희생의 제물로 지정되는 자는 언제나 그 사회의 가장 약자였던 것처럼 강대국간의 각축전에서 언제나 이해 초점의 흥정거리가 되어온 것도 역시 약소국이었음을 우리자신이 역사적으로 뼈저리게 체험했고 또 지금도 우리의 주변에서 그 잔학상을 목격하고 있는 터다.
상호이해관계가 없어지면 국제협약도 아무 실효성이 없고 스스로 돕고 자기 보존할 힘이 없는 자는 살아 남을 수 없는 것이 우리주변의 시류처럼 되어버린 지금 민족의 생존권을 이 위험한 주변정세의 변동에 표류시킬 수 없다는 자위의 의지가 오늘 31돌을 맞은 위용 64만 대군이다.
일·중공, 미·중공정상화와 이에 대항하는 소련 극동세의 팽창 등 주변정세의 움직임이 미묘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삼군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어도 필부의 뜻은 뺏지 못한다』는 옛말처럼 우리의 자주·자립·자위의 굳은 뜻은 결코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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