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 「뉴욕」서 프랑코독대 44년 지켜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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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피카소」의 최고 걸작『게르니카』의 금의환향은 「스페인」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서구민주주의의 대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지난 44년 동안「프랑코」의 독재를 이유로 맡았던 이 한 점의 그림은 반독재. 반전을 상징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초석과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80년 말이나 81년초에「마드리드」로 옮겨질『게르니카』와 함께 망명지 「프랑스」에 묻혀있는 그의 유화도 환향. 「프랑코」의 독재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피카소」의 전부가 조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피카소」는 1939년『후피카소」. 그의 『예술40년』전을 「뉴욕」서 열었을 때 전시작품 3백44점 가운데 이 위대한 명작을 자유민주주의 고향미국에 남기면서 「스페인」이 민주화한 후 돌려달라고 요청했었다.
「피카소」는 1937년「파리」에서 열린 『「스페인」공화국을 위한 국제전』에 참가했다.
36년「스페인」전쟁이 없었다면 「피카소」의 정치참여는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이 전쟁이 서구지식인에 안겨준 「쇼크」가 「마르로」의 소세 『포망』에 나타나있지만 「피카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폴·엘뤼아르」의 한편의 시 『1936년11윌』이었다. 순수예술에서 초현실주의로 방황했던 문학예술이 현실참여에 뿌리를 내린 시기가 『스페인·쇼크』직후이며 「피카소」가「엘뤼아르」의 정치시에 삽화를 그린 것도 이때였다.
1934년4월26일「프랑코」를 지원한 「나치」공군이 아름다운 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폭격을 가해 완전 파괴한 처참한 사진이 「파리」의 일간지「르·스와르」에 게재된 것을 그는 보았고 이를 예술수단을 통해 증언했던 것이다.
『「스페인」의 영혼을「피카소」의 총력이 집중되어 표현』한 『게르니카』의 수향과 81년10월 그의 탄생 1백년이 되는 날, 「영혼의 귀국」은 비만서구의 잔치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를 그리는 모든 인간의 잔치이며 승리가 되어야할 것 같다.

<파리=주섭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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