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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지침은 「의식화」와 행동선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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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8월4일 하오4시쯤 서울양평동 해태제과공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회사 「비스킷」 공장 건물 입구에서 여공 7O여명과 이회사 남자기사 10여명이 서로 고함을 지르면서 밀고 밀치는 소동이 일어났다.
건물안으로 들어가려는 여공들을남자들이 밀쳐내고 있었고 간혹 주멱질도 오갔다.
건물 안에선 1백여명의 여공들이 입구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공과 남자기사와의학동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여공들온 안에서 작업중인 여공들에게 『일할 시간이 지났으니 나가자』 고 고함지르면서 손짓을 했다. 20여분만에소란을 피우던 여공들이 남자직원들에게 밀려 회사문을 나서면서소동은 끝났다.
이러한 일은 이 회사에서 낮선일이 아니었다.
바로 전날과 지난 7월3일에도고함과 삿대질이 이회사 「비스킷」부와 「캔디」 부에서 있었다..
8시간의 근로를 끝낸 여종업원30명이 계속 일하려고 남아있는여공들에게 합꼐 나갈 것을 요구해이를 저지하는 남자기사들과 시비가 붙었던 것.이날 해태제과에는『1일 8시간근무 노동법을 지켜야한다』는 등의 유인물이 돌았다.
8월8일에는 여공들이 껌부로찾아가 동료들을 데리고 나오려다 또 한바탕 소란이 별어졌다.
근로자와 회사측의 이러한 대립은 비단 해태제과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5월18일 아침 영등포에 있는 남영 「나일론」 주식회사 정문앞에는 이회사공원 30여명이 회사에출근하려는 공원들을 막고있었다.
출근을 막는 공원들은 출근하는공원들에게 『회사측이 약속한 임금또25인상은 더무 적다. 50%는 올려야한다』 고 주장하면서 작업을 거부하자고 했다.
이들 공원들은 경문앞에 드러누워 차량통행을 막는 시위도 벌였다.
최근 7∼8년에 걸쳐 여러기업체 안에서, 일아나고 있는 이러한 분규는 모두 도시산업선교회에 의해조종되고 있다고 정부당국과 기업주들은 주장했다.
「해태」의 경우,문안에 있던 여공들은 시간외 근무수당을 받기위해 잔업을 하고자하는 측이며 이들을 끌고 나가려는 측은 시간외수당을 받지말고 8시간만 일하자는 것. 8시간만 일하고 봉급인장을 관철하자는 것이다. 회사측의 설명으로는 초임이 한달 5만원이고, 11시간까지 시간외 근무를 할 경우7만5천원이 되기 때문에 다수의여공들이 시간외근무제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남형」의 경우,춘근하는 공원은25%인상이 만족하지는 않으나 그이상의 인상은 다옴 기회를 기대하고 일단 일을 하자는 측이고 출근을 방해하는 측은 회사가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50%인상을 판쳔하자는 강경파였다.
동일 방직 (인천시만석동) 의는 더 복잡하다.
노동청조사에 따르면동일 방직사경우
건은 76년2월 동일방직느조(지부강 이영숙)가 임금인상을 대폭요구하면서 태업에 들어가벌어졌다.
회사측은 대폭 임금인상 요구는무리하다고 근로자를 설득했으나반발에 부딪쳤다.
태업이 장기화되면서 노조개편론이 나왔다.

<관금인상내25%와 50%의차>
노조지부장선거를 둘러싸고「도산」근로자와 일반근로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대회장은 어느쪽이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폭력과 인분이 난무하는 수라장이 되었다.
경찰이 개입하여「도산」소속 근로자 몇명이 경찰에 연행되자 여공4백여명이 회사마당에서 농성시위에 들어갔다.
회사측은 노조를 협조적인 체제로 바꾸기 위해 애썼다. 사내 분규로 인해 제품생산에 영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지부장 이영숙양이화사측의 설득으로 회사를 출근자 이충각, 정의숙 양등이 「도산」 근로자들을 「리드」 했다.
이들은 77년2월6일 서울명동성당에서「동일방직 해부식」을 한다고각계에 호소문과 초청장을 뿌렸다(이 모임은 유산됐다).
77년4월 수습대의원 회의에서 이층각양이 노조지부장으로 선출됐으나 다음해엔 한국노총파 전국섬유노동조합이 동일방직사건에 개입하여 다시「도산」측간부들이 제거됐다.
이렇게되자「도산」측근로자들은서울로 을라가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국내 일류방직회사였던 동일방직은 이 노사분규로 경영상에큰타격을 임었다.
미국내 도시산업선교희의 작용으로 수출도 급격하게 줄었다.
공화당의「도산」조사에마르면「도산」이 공장지대에 교회를 세우고 기업체에 있는 근로자를 모아 교육하고 철저한 점조직으로 기업체 안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벌인 일들은 이러하다.
근로자에게▲근로기준법을 교육시켜 부당한 대우릍 받고있다고 분개심을 북돋워 주며 ▲기존노조를허용노조라고불신케하여노조를장악하고▲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여 대정부 불신감을 조성한다.
실제로업계에서는『「도산」이들어오면 「도산」 한다』 는 얘기를 자주 한다.
이 「도산」 온 도시선교와 산업선교를 합쳐서 하는 말이다.
한국엔한국도시산업선교협의회·「크리스천」사회행동협의체·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등의 기관이 교파별로 생겨 이들 조직은 78년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를 만들어 상호 실무적인· 연락체로 운영해오고있다.

<미국측에 작용,윤출줄어>
노등청자료에따르면 「도산」에 종사하는 목사·신부는 장로회21명·감리교13명· 「가톨릭」4명등 38명이며 「도산」 의 중추적 실무자는 유명, 핵심근로자는 서울의 8백90명을 비롯, 전국에 2천여명이며 이들근로자들이 근무하는 회사는 1백30여개 업체다.
「부산」에서는 많은 연구회를 가지며 선교자료도 자주낸다. 그 자료에서도 「도산」은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표방하고있다.
「도산」의 선교활동보고에서 조승혁목사 (인천 「도산」 교회총무 기독교산업문제연구원장)는▲「도산닉교육」은 「의식화교육」에 중점을 두고▲행동적선교는 노동조합을 조직하드록 협조하는데에 중점을 두어「도산」이 직접·간접으로 협력해서 조직된 조합원의 수는 1만6천명이라고 집계했다.
「도산」의 근로자교욱온 이헏다.「도산」의 실무자들이 상오8시부터하오10시까지 「도산」사무실을 근로자에게 개방해 7∼산명 정도를 한조로묶어 1주 1∼2회 90분씩 토론회를 갖는다. 이토론회에는 「도산」실무자가 반드시 참석한다.
영등포 「도산」의 경우 한달에 4천∼5천명이 이 토론회에 참가하며6개월내지1년정도교육을실시하면 『의식이 깬다』 는 것이다(영등포「도산」교회충무조지송목사보고).
「도산」의연구회나 보고서에 자주나오둣이 그 「의식」 은 대개 선악을 양극구분하는 흑백논리다. 「착취닉수탈」 「저항」 「항거」 「투쟁」과같은 원색적인 어휘가 많이 쓰인다.「도산」측의 근로자들의 행동이 과격한것도 그때문인 것같다. 여공들의 나체시위나 면드칼흐프 지니고 다니기는 동일방직사건때 이미 알려진 일이었다. YH무역 여공들은 신민당에서 농성할매 「티살조」 와 「할'조」 를 만들었다.
이밖에 진노측 주장으로는 불량품울 만들어 출하상자에 넣어 회사를 골탕멱였다는 것이고 한국 「시그네틱스」두에서는일부근로자들이중식을 거부한채 밥그릇에 물을 부으며 「숭리가」 「투쟁가」 「자유가」등「도산」의 선동적 노래를 불렀다그 주장하고 있다.
완구회사인 대협(서울구노공단)애서는 77년6월 40여명의 종업원이 노동조합의 불필요성을 강조하는 유인물을 사내에 뿌리고 작업을 거부했다.
이회사 한정대사강은 이들의 행동으로 이해 7월까지 생산활동이거의 마비되었으며 수출도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또 태업으로 생산능률이 반이나즐었으며 미국기독여성단체에 자신들의 근로 조건이 엉망이라는 편지를 보내 주거래선인「마텔」사에서 수입을 크게 출였으며 「도산」근로자들온 회사의 제품을 일부러파손해 불량품을 만들거나 인형애까만 「리번」 을 달고 시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량품 만들어 회사 골탕>
공화당은「도산」의 활동이 『인간에대한 인간의 착취행의를 배제하겠다』 는 해방신학에 근거를 두고 『우리들은 경의파다. 』 『좋다 좋아, 같이죽고 같이 산다. 좋다 좋아』 등의노래를 부르면서 기존질서를 혁명적으로 변혁시키려 한다면서 「도산」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고 있다.
공화당은 이와합께 『우리사회가 급속히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과점에서 발전의 혜택을 받지못한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시인하고 앞으로 서민계충에 충분의 경제발전의 혜택이 돌아가도록무매적인 분배정책을 펴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조합이 너무무력하여종교단체가 노사문체에 개입할수 있었기때문에 노동조합의 활동을 적정한 선까지 강화할 필요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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