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의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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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0년예산편성작업어 막바지에 있다. 한정된 세입과 팽대한 세출수요는 연례적인 일이지만 금년은 더욱 더한것 같다. 또 날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을 보이고있는 경제생활에서 정부재정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긴축기조 속에서 진통중에 있는 80년예산의 편성현황과 가야할 방향등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내년도 예산편성작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경제기획원은 이미 내년도 예산규모를 올해보다 28.3% 늘어난 5조8천1백60억원으로 결정, 고위충의 재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기획원 예산실산하 21개 국·과에는 한푼이라도 더 따내려는 각부처 관계자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
전체 규모는 정해졌다 해도 같은 부처안에서도 소관별로 줄다리기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에는 재정긴축으로 신규사업이 거의 잘려나갈것이 확실해지자 각종 사업계획을 세워 놓았던 각부처는 한가지 사업이라도 건져보겠다고 사람을 기획원에 상주시키다시피 하면서 애원·협박·진정·건의서 제출등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각 부처에서 내년에 꼭 써야겠다고 내놓은 예산요구액은 7조6천3백38억원이다. 올해예산 4조5천3백38억원보다 무려 68.5%나 늘어난 규모다.
이중에는 내년도에 새로 시작할 신규사업만 대소를 합해 1백32건이 들어 있으며 그 총사업비는 2조2천4백79억원, 내년 예산에 반영돼야할 금액만도 6천6백76억원에 달하고 있다.
반면 내년도 예산규모는 올해보다 30%를 늘리기 어려운 입장이다.
우선 세입에 한계가 있다. 나라살림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꾸려나간다. 경기가 좋고 기업활동이 활발하면 세금도 늘고 따라서 정부의 수입이 늘게 마련이다.
경기가 나빠도 물가가 오르면 명목상 세입은 늘수가 있다.
올해만해도 석유파동으로 물가가 올라 경기는 가라앉고있는데도 정부의 세입은 당초예상보다 3천2백억원정도가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내년도는 사정이 다르다. 경기는 안정화정책의 추진으로 둔화되어 경상성장률은 65년이래 가장 낮은 22.1%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고있다.
3차계획기간(72∼76) 중의 평균 경상성장률 31.8%, 77년의27.6%, 78년의33.6% 성장과 비교하면 사정을 알수 있다.
물가도 올해보다는 안정되어 공공요금·「서비스」요금을 모두 감안한 물가상승률(GNP「디플레이터」)이 12%수준에 머무를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볼때 내년도 세입은 올해보다 크게 늘려잡아야 3O%정도 늘어난 5조9천억원수준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물론 재원이 절대적으로 예산규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하면 차입을 할수도 있고 국채도 발행할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년도 예산편성에서는 적자예산을 편성하면서까지 재정규모를 늘릴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오히려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긴축을 강행하여 흑자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기업이나 가계에 대해서는 고통을 참을 것을 강요하면서 재정이 흥청거린다면 국민에 대해 긴축을 요구하는 정부의 말이 설득력을 잃을 뿐아니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재정의 비중으로 보아 안정화시책 자체가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방비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까지 겹쳐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있다.
국방비를 GNP를 5.6%에서 6%로 늘리는 경우 예산의 3분의1을 차지하는 국방비의 증가율이 36%가 된다. 그만큼 일반예산에서 쓸수있는 여유가 줄게 된다.
내년도 세입을 5조9천억원으로 잡는다 해도 국방비를 뺀 일반예산에 돌아갈 몫은 3조8천억원에 그쳐 27%의 증가를 보일뿐이다.
올해 물가가 25%를 넘을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일반예산은 실질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해야한다는 계산이다. 사정이 이런만큼 웬만한 신규산업은 보류하거나 연기하는게 불가피한 실정이다.
일반경상비도 최대한 억제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물가상승 때문에 예산규모를 더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없는것은 아니나 일본의 모학자가 지적했듯이 물가상승까지 감안해서 씀씀이를 늘린다면 긴축이란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석유파동의 고통을 겪고있는 일본은 내년도 에산편성에서 각성이 요구할수 있는 예산의 증가한도를 79년예산의 9.8%로 제한하고 있다.
또 여비·경비등 일반행정비는 79년수준으로 묶고 석탄·석유대책비등 특별회계에 대해서만 한도초과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의 사정이 일본과 같을수는 없으나 30%가까운 예산증가를 놓고 모자란다고 하는 것은 반성할 여지가 있다고 할수밖에 없다.
졸이고 쥐어짜도 조세부담률은 17%수준이다.
긴축을 한다해도 국민의 조세부담은 별로 줄지 않는다는 얘기다.
긴축에 앞장서고 있는 경제기획원은 일단 내년 예산을 28.3% 증가라는 긴축예산으로 편성해 놓고 있지만 이 예산이 확정되려면 무수한 고비를 넘겨야 한다.
긴축을 주장하는 사람도 자기부처나 자기 출신지역의 예산이 깎인다는데 찬성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단 긴축예산이라는 딱지를 붙인 이 예산안이 불황의 역력과 정치적 배려에 의한 각종의 팽창요구를 어느정도 막아내고 원형을 유지할 것인지 두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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