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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하고 떼고 다시 칠하고 … 보이나요, 시간의 무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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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겐 시련도 실패도 참 많았다. 한 번에 딱 끝났다 싶은 게 없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를 단단하게 했다.” 화업 40년 회고전을 여는 정상화(83)씨의 말이다. [사진 갤러리현대]

캔버스 위에 5㎜ 두께로 고령토를 초벌칠한다.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흙칠한 게 완전히 마른다. 마른 캔버스 뒤에 격자무늬로 줄을 친 뒤 그대로 가로 세로 접어 올린다. 균열진 고령토를 떼어낸다. 한 달 남짓 걸린다. 그물처럼 금 간 캔버스 위에 다시 물감을 얹고 떼어내고 덮어나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어느새 1년이 지나간다. 정상화(83)의 그림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실제 그림은 심심하다. 흰색 혹은 청색으로 가까이 가서 보아야 그물 같은 격자가 어렴풋하다. 31년 전 국내 전시를 위해 프랑스에서 그림을 들여올 때 일이다. 공항의 세관원은 물론 전시장의 관객도 이렇게 물었단다. “그런데 그림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작업을 힘들여 계속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같은 걸 반복하는 건 뭔가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어 지금까지 끝없는 일을 해 오고 있다. 인생이 가도가도 같은 길을 윤회한다. 가더라도 돌아온다. 죽을 때까지 삶은 반복되지 않나.”

 화업(畵業) 40년, 정상화 회고전이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 신관과 두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1970년대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45점이 걸렸다. 중학교 2학년 때 미술부를 드나들다가, 서울대 회화과로 진학했다. 대학 시절 미국 대사관 앞에서 팔던 ‘라이프’지의 총천연색 화보에 설렜다. “통조림과 자동차 광고의 고운 색조차 달리 보였다. 마치 새로운 걸 요구하는 듯했다. 그게 추상화를 시작하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추상 표현주의도 잡지를 통해 봤다.”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 천막 사다가 캔버스를 짜고 페인트에 테레빈유를 섞어 그리던 시절이었다. 서울예고 교사로 재직하던 1967년 파리로 훌쩍 떠났다. “교과서에서나 접하던 그림들을 직접 보고 싶어서” 시작된 프랑스·일본 떠돌이 생활은 25년간 이어졌다. 원색에 끌려 시작한 추상화이지만 이제는 색을 거의 안 쓴다. “단순화해야 본질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말이 많으면 못 쓴다. 그림도 그렇다. 한 가지만 말한다. 작은 데부터 시작한다. 큰 것부터 하면 부담되고 무리가 간다. 그게 내가 그림으로 터득한 거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50대 중반부터. 트럭에 배추 싣기, 인쇄소 교정과 삽화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런 그에게 요사이 단색화 열풍은 새삼스럽다. “일찌감치 그림이 팔렸으면 내가 큰 일을 했을 텐데(웃음). 우리가 그냥 지나친, 깜빡하고 잊은 시절이 있다. 그걸 되찾았다는 점에서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란다.

 그는 5년 전 대장암 수술을 했다. 지금도 조수 없이 경기도 여주 작업실에서 새벽 5시면 일어나 자정까지 작업한다. 작업이 안 풀리면 걸어둔 징을 두드린다. “아직 젊으니까 작업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며.

 30일까지. 무료. 02-2287-350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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