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과일도 한류 … 요새 비행기 많이 타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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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고 주먹만한 크기에 아삭거리며 씹히는 맛이 특징.’

 농림축산식품부가 파악하고 있는 한국산 배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가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아기 머리 만한 크기의 배를 선호하지만, 외국에선 손에 쥘 수 있는 크기가 인기를 끈다. 칼로 껍질을 깎아 먹는 게 아닌, 손에 든 채 입으로 베어먹는 과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씹히는 맛도 서양배와 다르다. 갓 땄을 때 속살이 단단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물러지는 서양배는 씹을 때 아삭거리는 느낌이 잘 나지 않는다. 이 같은 한국 배의 특징이 외국에서 장점으로 인정 받으면서 배 수출액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배 수출액은 2011년(4726만 달러)에 비해 16% 늘어난 5487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배 수출은 더 늘어날 잠재력이 있다. 멕시코가 한국산 배를 수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05년 10월 정부가 “배 시장을 열어달라”고 멕시코에 요청한 지 9년만에 받아들여졌다. 농식품부는 “두 나라가 배에 대한 검역요건에 최종 합의하면서, 한국산 배 생과실에 대한 수출 협상이 타결됐다”고 2일 밝혔다. 농식품부는 9월 쯤 첫 수출 물량이 멕시코로 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멕시코는 중남미에서 한국산 배 수입을 결정한 세번째 나라가 됐다. 칠레와 페루는 각각 1999년과 2013년에 한국 배에 문을 열었다. 수출량은 아직 공식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적다. 하지만 멕시코는 다를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칠레·페루와 달리 멕시코인들의 식성이 미국인과 비슷하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산 배는 2446만 달러 어치가 미국에 수출됐다. 그만큼 수요가 있는 것이다. 백동현 농식품부 수출지원과 사무관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산 배가 멕시코 과일 상점에 진열돼 있다는 정보가 현지 주재원으로부터 접수돼왔다”며 “미국에 수출된 물량이 멕시코로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만큼 한국산 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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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산 과일의 세계 진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과일 수출량은 2억3339만 달러로 2008년(1억5490만)에 비해 50.7%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엔 사과·배의 생산량이 늘어나 국내 가격이 떨어진 대신 수출 경쟁력이 올라갔다. 태풍 피해가 심했던 2012년에 비해 생산량이 61% 늘어난 것이다. 수출 지역은 아직 동남아와 미주 지역에 집중돼 있다.

 대만은 한국산 배의 최대 수입국이다. 지난해에만 2574만 달러 어치를 사들여, 전체(5487만 달러)의 46.9%를 차지했다. 한류 열풍의 영향과 함께 바나나·망고처럼 물컹물컹한 동남아 과일과는 다른 맛이 인기 비결이다. 대만이 수입하는 배의 70.4%가 한국산이다. 다음으로 배 수출이 많은 곳은 미국이다. 표주박 모양의 미국 배와 다른 품종에서 경쟁력이 나온다. 미국 시장에선 한국산 배의 껍질 색이 모래 색깔을 띈다는 이유로 ‘Sand Pear’로도 불리기도 한다. 2012년 미국의 한국산 배 수입 물량(2446만 달러)은 아르헨티나산(2810만 달러) 다음이다. 미국이 한국산 배에 관세를 매기지 않는 것도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2012년 수출량(553만 달러)이 전년도(836만 달러)에 비해 크게 떨어졌던 사과도 지난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사과 또한 수출량(2013년 698만 달러)의 절반 이상을 대만이 사들인다. 대만에선 사과가 간식·후식으로 가장 널리 이용되는데, 자체 생산량은 계속 줄고 있다. 높은 임금 수준과 운송비용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 않고, 경작지 개발을 정부가 엄격히 제한하면서 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을 수입 사과가 차지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일본산 사과에 비해 한국산의 품질 인지도가 떨어지는 점은 개선점으로 지적된다. 올해 1월 정부의 대만 시장 조사에서 일본산 ‘후지 사과’ 품종은 한 개에 3300원에 팔리는데 비해, 한국산 같은 품종은 1100원이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칠레·뉴질랜드산에 비해선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본산처럼 고급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본산에 비해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고 포장도 잘 돼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딸기 수출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딸기는 일본 품종에 비해 과육이 단단해 씹는 맛을 느끼기 좋아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딸기 수출액은 2011년 1926만 달러에서 지난해 2856만 달러로 늘었다. 특히 홍콩에 대한 수출액은 지난해 1067만 달러로 총 수출량의 37.4%를 차지했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딸기산업 경쟁력 제고대책’ 간담회를 열어 “딸기를 수출 전략산업 품목으로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육성안에는 내년부터 향후 10년 동안 딸기 종자 개발에 190억원을 투자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딸기는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보통 7일이어서 주로 비행기를 이용해 수출하고 있다. 품종 개량을 통해 신선도 유지 기간을 20일로 늘리면, 배를 이용해 수출할 수 있게돼 가격 경쟁력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딸기 농가의 재배시설 개선 비용도 앞으로 8년간 84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영식 농식품부 원예경영과장은 “품종 개량으로 수출 지역을 확대해, 2022년 딸기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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