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편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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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런던」교의 리치먼드」의 「큐」라는 곳에 자리잡은 공공문서보관소 (Public Records Office). 대영박물관의 진열대에「그리스」신전의 한 「블록」이 통째로 옮겨져 있는것을 보고 놀란 가슴이 여기와서 또한번 놀랐다. 후자가「바이킹」다운 스케일을 과시한다면 PRO는 영국「스타일」의 치밀성을 입증한다 할까.
PRO에는「마그나·카르타」원본과「노르만」정복당시의 토지대장인「둠즈데이」문서로부터 「셰익스피어」의 친필엽서와 한국의 3·1운동에 이르기까지 온갖 진귀한 자료가 다 보관돼 있다.
그러나 정작 눌라운 것은 축적의 방대함 뿐만 아니라 분류와 열람방법의 치밀함이다. 현관엘 들어서면 접수와 안내를 맡은 노년의 여직원이 친절히 맞아준다.
기입할 것을 기입하니 부인은「워키토키」같은 무전기를 내주며 어디 어디를 거쳐 어디 어디로 가라고 일러준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백여번씩 똑같은 말을 되풀이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귀찮다거나 신경질 내는 기색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2층에 올라 3·1운동에 관한 당시의 외무성문서를 신청해보았다.「컴퓨터」앞에 앉아 지시서대로 하나씩 하나씩「키」를 눌러갔다. 맞으면 그다음 할 일이 화면에 글자로 나타나고, 톨렸으면 『잘못눌렀으니 다시 해보라…』 는 글자가 나타난다.
이윽고 자료 소재지에 대한 추적이 끝나면 동시 타자된 종이(신청서)를 찢어 다음 계원에게 넘긴다. 계원은 신청서를 바구니에 담아「컨베이어」에 올려 놓는다. 그때, 신청한 자료의 소재지가 만약 지하실(3번)이면 3번 단추를 누른다.「컨베이어」에 실린 바구니는 3번 통로로 굴러가 신청된 자료를 실어온다.
자료추적이 끝나면 「워키토키」에선 삑삑하는 소리가 들린다. 찾을 것을 찾았으니 와서 가져가라는 신호다.
역사학을 전공한 박사「앨리스·프로차스카」양은 여기 근무한지 4년째라고 한다. 대학에남는것보다 봉급도 더 좋고 공부할 자료도 더 많아서 만족이라며.
58년 설립된 PRO는 행정적으로 상원의장이 관할하는 국가기관이다. 4백명 직원중 역사학 전공의 박사가 30명, 이용자중 30%가 「뿌리」를 캐는 족보연구가. PRO의 창고는 30년마다 해금하는 정부문서와 시민의 기증문서로 채워져 있다.
분류방식은 정부 각 부서에 따른「그룹」분류 밑에 시대별 또는 분야별「클라스」로 세분된다.
「프로차스카」양은 이 문서들을 값을 칠 수 없을이만큼 귀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열람좌석 바로 머리 위엔 TV가 장치돼 절도행위를 감시하고 있었다.
종이 쏙지를 모으고, 기증하고 보관·분류하며 그것을 위해 국가가 정밀과학과박사들과 돈을 동원하는 마음 씀씀이.
영국은 흔히 병이 들어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PRO는 『영국은 역시 영국』이라는 신뢰를 갖게 만들었다. 문명의 힘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종이쪽지에 대한배려』에 건재하는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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