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球와 함께한 60年] (9) 대통령과 프로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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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81년 12월 프로야구 창립총회를 통해 프로야구의 뼈대를 갖췄고 이듬해 1월 6일에는 6개 구단의 첫 구단주 회의가 있었다. 그때 구단주 가운데 한분이 "우리가 프로야구 구단의 대표들로서 대통령께 한번 인사를 가는 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하고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이진희 당시 MBC 사장이었던 것 같다. 구단주들 모두 그 의견에 동의했고,나는 당시 문교부 체육국장을 통해 구단주들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튿날 답변이 왔다. "곧바로는 안되고 약 한달쯤 뒤에는 가능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나는 "프로야구 구단 총수들의 의견이니 빨리 진행시킬 수 없겠느냐"고 재촉했다.

그러나 그쪽에서는 "각하 면담은 그렇게 쉽게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알겠다"고 전화를 끊은 뒤 서종철 총재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서종철 총재가 육군 참모총장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수석 전속부관을 지낸 바 있다. 그 이후 전속부관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박세직 전 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 이어졌다. 그런 긴밀한 관계 때문에 서총재는 청와대와 쉽게 통했다.

서총재에게 부탁을 드리고 난 다음날, 총재가 나를 불렀다. 서총재는 "이총장, 1월 20일에 가기로 했어요.한 버스에 같이 타고 갑시다. 경호실에서 사람이 올테니 그렇게 아세요"라고 통보했다.

1월 20일. 청와대에 도착한 구단주들은 전두환 대통령과 이규호 문교부장관, 이상주 교육문화수석과 다과를 함께 하며 프로야구 전반에 걸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전대통령은 해박한 프로스포츠 지식을 과시했다.

유럽 프로축구, 미국 프로야구의 예를 들어가며 어떻게 그 종목이 국민적 스포츠로 자리잡았는지를 줄줄 설명했다. 그가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나도, 구단주들도 모두 놀랐다.

여기서 전 전 대통령이 프로야구에 미친 영향 하나를 소개한다.

프로야구 출범 초기 대부분의 선수들은 서울에 집이 있었다. 실업야구 출신들이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프로야구가 생기더라도 서울에서 머물며 경기가 있는 날만 지방으로 이동해 경기를 치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대통령은 "프로선수는 경기장에서만 스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운동장을 떠나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스타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에서도 스타가 돼야 진짜 프로야구의 붐이 일어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한마디에 구단주들은 속으로 '선수들을 모두 연고지로 이사시키지 않으면 안되겠구나'라고 마음먹게 됐다. 전대통령의 한마디로 지방 연고팀 선수들은 출범 첫해 모두 서울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전대통령은 또 그 자리에서 이규호 장관에게 이런 말도 했다. "이장관, 문공부 장관에게 얘기해서 TV에 매일 드라마만 방송할 것이 아니라 야구중계도 좀 많이 하라고 하세요. 골든 아워에 한결같이 드라마 밖에 없지 않습니까.

드라마야 매일 나오는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닙니까. 그런 거 말고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중계하도록 하세요"라고 지시했다. 그 덕분에 프로야구는 TV 중계방송을 어렵지 않게 따낼 수 있었다. 프로야구 흥행에 기폭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용일(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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